<일요일 일요일 밤에>MBC 매주 일요일 오후 6시10분
국내 쇼·오락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유독 ‘미션’을 좋아한다. 특히 ‘미션프로그램’의 원조이자 백미라 할 수 있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의 경우, 꼭지별로 한 가지씩 미션을 부여한 뒤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프로그램의 전부다. “퀴즈를 풀어 1등을 차지하라! 출신학교에 거액의 장학금이 주어지리라.” “밤 9시에 아파트 한동 전체를 암흑천지로 만들라! 아파트 곳곳에 CCTV가 설치되리니…. ” 대개 이런 식이다.
관록있는 프로그램인 만큼 <일밤>에서 그동안 선보인 기상천외한 미션들만 나열해도 한 페이지로는 모자란다. 우선 “횡단보도 앞 정지선을 칼같이 지켜 다 함께 교통문화 선진국을 이루자”거나 “놀이공원에서 공짜로 빌려주는 우산은 반드시 되돌려주자”는 대국민 계몽형 미션이 있었다. 가수의 깜짝 콘서트에 관객 5천명을 불러모아야 하는 대중동원형 미션도 있었고, 어려운 이웃들의 일터나 집을 깔끔하게 고쳐주고 그들의 인생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불우이웃돕기형 미션, 서울 시내에 살고 있는 야생 너구리를 찾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는 환경친화형 미션도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미션들이 꾸준히 개발되는 이유는 물론 시청률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쇼·오락 부문은 그 어떤 장르보다 경쟁이 치열하지만, 반복 시청을 유도하기가 무척 어렵다. 드라마처럼 다음 줄거리를 학수고대하거나 다큐멘터리처럼 정색을 하고 기다려주는 시청자가 있다면 오죽이나 좋으랴마는, 출연자가 시덥지 않거나 이야기가 조금만 지루해도 순식간에 채널이 돌아간다. 그런데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프로그램 전면에 내세우면, 시청자들은 출연자가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단순 호기심’의 단계와 임무 완수를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출연자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감정이입’의 단계를 지나 목표달성 뒤에 오는 ‘찐한 감동’의 순간까지, 한눈 한번 팔지 않고 꼬박 지켜보게 된다. 특히 임무를 완성했을 때 주어지는 대가가 공익적인 성격을 띠면, 감동은 두배가 되고 임무 수행과정에서 연출된 억지나 과장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방 안에만 갇혀 살던 장애인을 위해 음성인식 컴퓨터를 마련해준 제작진에게 “리모델링쇼도 아닌데 집구경에 너무 뜸을 들이는 게 아니냐, 감동을 과장하는 모습이 닭살스럽다”고 비난을 퍼붓는다면, 아마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간성을 의심받을 것이다.
지난 11월3일에 첫 방송된 <일밤>의 ‘꿈은 이루어진다’ 코너 역시 전형적인 미션프로그램의 규칙을 따르고 있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주민들이 소원을 담은 사연을 보내면, 진행자 박수홍이 그 아파트를 찾아가 주민들을 만난다. 아파트 주민들은 밤 9시까지 집에 돌아와 두꺼비집 스위치를 붙들고 있다가, 9시 뉴스가 시작되면 동시에 불을 끄는 이색 암흑쇼를 펼친다. 한 가구도 빠짐없이 10초간 불을 껐다가 일제히 다시 켜면 임무 완성. 일치단결한 주민들에게는 소원을 성취하는 벅찬 감동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는데, 아파트 곳곳에 CCTV를 설치하고, 마을문고를 새 단장하고, 백혈병에 걸린 이웃집 아이를 돕는 등 하나같이 공익적인 성격의 소원들이다.
그러나 이처럼 공식을 충실히 따랐는데도, ‘꿈은 이루어진다’를 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불편한 마음이 된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이웃에게 전화해 “늦어도 8시30분까지는 돌아오라”고 신신당부하는 부녀회장님,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김밥을 사러 나왔다는 이웃을 우격다짐으로 돌려보내며 “벌써 8시가 넘었다”고 외치는 통장님…. 낮에 집을 비우는 맞벌이 부부들은 ‘요주의 인물’이고, 노인 단독가구의 경우는 “제대로 해내실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줄을 잇는다. 아파트 주민들이 모처럼 힘을 합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고작 삼척동자도 할 수 있는 ‘불껐다 켜기’라는 것도 기가 찰 노릇인데, 90여 가구 주민들이 개인적인 일정을 접어둔 채 집으로 달음박질을 치는 일사분란함의 대가로 선물을 주는 방송의 오만함이라니. 목표를 향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비치기는커녕, 이처럼 단순한 약속시간 하나 딱딱 못 맞추는 ‘배신자’가 나올까 가슴이 졸아든다. 좋은 일 한번 하려고 모처럼 시간을 낸 대다수의 주민들이 이웃의 배신을 쉽게 용서할 수 없을 텐데…. 앞으로 저 동네에서 살기가 힘들어질 텐데…. 그러다 문득 싱거워진다.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가는, 주민들은 물론 보는 이들까지 불쾌하고 찜찜할 터.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이상한 ‘미션’은 매번 성공해야겠구나. 그렇다면 꿈은 만날 이루어지겠네. 이미경/ <스카이라이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