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진스키의 소설 <정원사 챈스>(Being There)의 주인공 챈스 가드너는 이름 그대로 정원 가꾸는 일말고는 아무것도 해본 적 없다. 챈스에게 세상은 곧 정원이었다. 주인의 죽음 이후 억지로 정원 밖으로 떠밀려 나왔어도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건 여전히 정원 가꾸기다. 미국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뿌리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대답하고 실업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냐면 꾸준히 벌레를 잡고 잡초를 뽑아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을 물어도 정원 가꾸기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건 실은 그것말고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일본에서 ‘게임뇌’라는 희한한 단어가 화제가 되었다. ‘β파’란 뇌의 제일 앞부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의욕, 판단력, 감정억제 등의 활동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니혼대학 모리 아키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게임을 오랫동안 하는 사람은 β파 발생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는 치매 환자의 경우와 아주 흡사하다며 모리는 이렇게 β파가 현저하게 약화되는 특징을 보이는 뇌를 ‘게임뇌’라고 정의했다. 충격적인 것은, 게임뇌를 가진 사람은 게임을 할 때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뇌 앞부분의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NHK출판에 의해 <게임뇌의 공포>(ゲ-ム腦の恐怖)라는 충격적인 제목으로 출판되었는데, 모리의 ‘뇌파를 본다면 비디오 게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질 것이다’라는 위협적인 코멘트가 덧붙여지면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게임 업계나 게이머는 강하게 반발했다. ‘게임뇌’라는 다분히 상업적인 표현에다 언론이 떠들어대는 선정적 보도, 거기다가 ‘β파’라는 일반인은 잘 모르는 말 등이 맞물리니 비판할 거리는 모자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 이런 연구는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뇌 생리학을 전공하는 영미권 학자들 사이에서도 게임과 뇌 기능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다. 게임의 일정 단계까지는 뇌의 활동량이 급격하게 증가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갑자기 비효율적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건 대단히 독창적인 주장은 아니다. 모리의 기여라면, β파라는 실증적 데이터를 이용해서 증명하는 작업을 한 것뿐이다. 일정 단계까지는 게임 로직을 익히기 위해서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이때 뇌는 활성화된다. 웬만큼 몸에 익은 뒤에는 생각보다는 반사신경으로 플레이하게 된다. 이때부터 뇌는 시각과 몸에 기능을 양보하는 거다. 일단 흥분을 식히고 생각해보면 게임뇌 주장은 일리가 있다.
평생 정원만 가꾸면서 어떤 질문에도 정원 일 이야기로 대답하는 챈스는 ‘정원뇌’라고 할 수 있을까 챈스가 세상을 정원 안과 밖으로만 구분했듯 게이머들은 세계를 게임안과 밖으로 이해한다. 생각이 필요한 순간 곧장 몸에 붙은 게임의 논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모리는 게임뇌 증후군을 피하기 위해선 오감을 발달시키라고 말한다. 자연 속에 들어가 온몸으로 그 소리, 그 냄새, 그 느낌들을 충분히 즐기고, 이를 지속적으로 머릿속에서 반추해보라고 한다. 하지만 거만한 정치가와 부유한 기업가들은 챈스의 이야기를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해 이용했다. 챈스는 자기도 모르게 사회구조에 편입되었고, 사회는 집단적 사기의 시스템에 챈스를 끌어들여 이용하고 소비했다. 게임뇌라는 것이 과연 온당한 주장인지, 아니면 이름을 날리고 싶어 몸이 단 사이비 학자의 무리한 주장인지 따지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모리 교수의 충고를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인지, 아니면 정원사 챈스를 포획해 소비했던 바로 그 사회에 가까운지 자신이 없다. 박상우/ 게임칼럼니스트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