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se, 1979년감독 마크 라이들출연 배트 미들러EBS 11월30일(토) 밤 10시
“사랑이 행운아나 강한 자를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면 겨울눈 아래의 씨앗을 생각하세요. 태양의 사랑을 받으면 봄에 장미로 피어나는 씨앗을.” <로즈>는 음악으로 더 오랫동안 기억되는 영화다. 가수 재니스 조플린의 삶을 모델로 한 이 영화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몇 가지 클리셰를 품고 있다. 명성과 소외, 그리고 불행한 최후라는 관습적인 서사다. 비교적 근작인 <올모스트 훼이모스>(2000)에서 그렇듯 할리우드영화가 록음악인의 삶을 다루는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니다. <로즈>의 여주인공은 무대에 올라 “마약과 섹스, 그리고 록음악!”이라고 울부짖으며 관객을 흥분시킨다. 그것이 버릇 같은 술주정인지, 혹은 사랑의 전도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지만.
<로즈>는 어느 여가수의 이야기다. 로즈는 사랑과 휴식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바쁜 그녀의 일정은 로즈에게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팬들을 위해 늘 공연무대를 옮겨야 하고 매니저는 로즈에게 일을 강요한다. 공연에 대한 압박감은 로즈를 술과 마약에 빠지게 한다. 로즈의 애인은 그녀를 돕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제로 그가 할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차츰 정신적으로 문제를 보이던 로즈는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겪고 쇠약해져만 간다. 그렇지만 로즈는 자신의 일을 끝까지 포기할수 없다.
영화 <로즈>는 가상의 전기영화다. 로즈는 스타덤에 올라 매스컴과 팬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한 나날을 보낸다. 그녀가 가는 곳엔 늘 기자들이 따라 붙고 사인공세가 이어진다. 하지만 무대 뒤편의 그녀 삶은 다르다. 술에 절어 있으며 로즈는 매사에 신경질적이다. 그리고 “난 너무너무 피곤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럼에도 무대에서 내려올 수 없다. 냉혹한 현실은 이 열정적인 가수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매니저는 헬기까지 동원해 로즈를 태우고 다니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한다. <로즈>는 이렇듯 쇼비지니스의 울타리에 갇힌 여성이 과로와 불안으로 스스로의 영혼을 불현듯 소모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 제니스 조플린을 비롯해, 1960년대에 불꽃 같은 인생을 마감했던 몇명의 록음악인을 연상케 하는 초상화에 다름 아니다.
영화는 ‘추억의 명화’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배트 미들러의 연기는 근작 <왓 위민 원트>에서 정신과 의사 연기에 비한다면 명연이라 할 만한 것이다. 영화 속 라이브 장면은 공연 다큐멘터리에 근접하고 있으며 배트 미들러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팝과 록의 명곡을 노래하고 있다. 마크 라이들 감독은 원래 배우 겸 재즈음악인으로 활동했던 적이 있는데 옛 경험을 살려 영화를 현장감 있게 연출해냈다. 영화의 엔딩은 더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과대포장이나 겉멋이 섞여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대에서 지쳐 쓰러지는 어느 여가수의 모습은, 여전히 눈시울을 따갑게 한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