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Y와 나는 인도대사관의 도서실 작은 CD장에 진열된 30여장의 비디오 CD를 보며 자료 담당자에게 부탁한 비디오 리스트가 오기를 기다렸다. CD장의 대부분은 음악 CD로 채워져 있었다. Y는 “명색이 발리우드인데 이건 너무하지 않나” 하는 눈빛이었다. 잠시 뒤 담당자가 비디오 리스트를 가져왔다. 4페이지 분량의 리스트엔 인도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일색이었다. 결국 우리가 볼 수 있는 인도의 극영화는 30여편뿐이었다. Y와 나는 두편의 비디오 CD와 음악 CD 한장을 대여하고 대사관을 나왔다. 단국대 후문쪽 한남동 길은 건너편의 이태원 길처럼 대사관들이 꽤 많았다. 사실 처음 우리가 찾으려고 했던 곳은 타이대사관이었다. Y와 나는 태평양전쟁 전후에 만들어진 타이의 시대극이나 멜로드라마()를 한국의 비슷한 영화들과 비교해보고 싶었다. 타이가 일부다처제를 법으로 금한 것은 태평양전쟁 뒤이며 한국은 개화기 이전에 첩을 법적으로 인정했었고 축첩을 금한 뒤에도 첩은 상당기간 남아 있었으므로 서로 유사한 점이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이대사관 웹사이트를 아무리 뒤져봐도 타이영화를 볼 수 있는 창구는 없었다. 우리는 자연히 다른 대사관들 사이트에 접속했고 비디오를 대여하는 인도대사관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엔 타국에 나간 한국 공관이 남한영화를 얼마나 비치해두었을까 그 나라말로 자막은 넣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뮤지컬에서 쿵후액션으로 종교적 풍경에서 성적 은유의 뮤직비디오로 비약하는 두편의 영화를 보면서 그만 까먹어버렸다. 이지윤/ 비디오 칼럼니스트 emptyba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