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렇다. 이 배우고 익힘의 즐거움이 있는 공부 중 하나가 피아노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피아노는 우선 보기가 그럴듯하다. 오라토리엄 홀의 그랜드 피아노가 아니고 집에서 볼 수 있는 피아노라도 어지간한 가구만하니까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악기, 가령 기타나 하모니카와는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가격도 상대적으로 비싸다. 뚜껑을 열면 가지런한 치열처럼 드러나는 건반, 피아노에 비치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피아노는 그 자체로서 훌륭한 독주 악기이자 협주도 얼마든지 가능한 전천후 수륙양용정 같은 악기다. 냉철한 그 음감은 과장이 없으며 수학적이고도 정교하다. 바이올린과 달리 피아노는 초보자가 연주해도 그럭저럭 들어줄 만하다.
무엇보다도 피아노는 과거 ‘좀 있는 집’의 영양(令孃)들이 탄주하던 악기였다. 1970년대 후반 또는 80년대 초입의 어느 가을날, 느닷없이 어느 부르주아의 집안 1층 응접실에 앉아서 모자를 빙빙 돌리며 안절부절하고 있던 20대의 청년에게, 물론 이 청년은 농촌 출신으로 제대로 된 교양교육을 받아본 건 대학 교양시간이 처음이며 제대로 된 연주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귀에 들려오게 마련인 연주가 바로 피아노 연주였던 것이다. 이게 결정적이다. 그런데 자신의 인생의 키를 어느 쪽으로 돌릴지, 부르주아로의 상승인가 아니면 로맨틱한 방황과 추락인가 또 아니면 그저 그런 월급쟁이로서의 생존을 확보하는 쪽 이 세길 가운데 어디로 갈 것인지 몰라 방황하고 있던 청년은 막연히 2층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무슨 곡이었던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그 정도로 하자. 기실 쉬워 보이는 이런 곡이 연주하기에는 부담스럽고 어렵다는 것을 청년은 이때는 알지 못했으니까. 청년은 피아노의 달빛에 감동하고 달빛 아래에 그림자를 만들며 걸어가는 자신, 가볍게 드레스 자락을 흩날리며 따라오는 영양의 모습을 상상하고는 그때 그만 자신의 인생의 목표를, 피아노가 있는 방에서 언제나 아름다운 영양으로부터 언제든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팔자가 되는 것으로 정하고 만다. 물론 청년의 목표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손쉽게 인생을 결정하는 바보에게 관심을 가질 영양들은 없으니까. 하다못해 피아노까지도 생각이 있다면 이런 얼간이를 경멸했을 터이니까.
청년은 삼십대가 되고 결혼을 했지만 그러노라 바빠서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없었다. 아이가 생기고 자라나고 손가락이 피아노를 칠 정도로 자란 어느 날 그는 문득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생각을 했다. 그러자면 피아노가 있어야 했고 난데없이 피아노를 사겠다는 자신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아내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피아노를 들여놓았다. 아이에게는 일주일에 두번 피아노 선생이 와서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그의 집에는 서툰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이따금 능숙한 피아노 연주가 있기는 했지만 그건 피아노 선생의 연주였고 그가 원하는 곡도, 아는 곡도 아니었다. 그렇게 몇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피아노 선생이 교습을 그만두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왜
“저도 피아노 배우느라고 어릴 때부터 교습을 받았거든요. 재주가 있으니까 학원을 안 보내고 독선생한테 배웠지요. 대학까지 피아노를 전공할 정도면 사실 과외비만 해도 몇천만원 더 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제가 애들 가르치면서 받는 건 너무 적어요.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 대학원도 가고 경력을 더 쌓을 겁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대우를 받을 거예요. 투자하는 거죠, 뭐.”
그러고보니 논술도 수학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을 보내기 위해 과외를 할 수 있는 모든 과목이 그렇다. 그렇게 해서 가는 대학, 나오는 대학은 얼마나 우리 인생에 의미가 있는가. 대학 그 자체말고는. 그래서 배우고 때로 익힐지라도 즐겁지 아니한 것이다.성석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