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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만 가득한 그 죽음
2002-11-21

친애하는 영화예비군 Y가 <살인자의 해부> DVD를 샀으니 같이 보자고 연락해왔다. Y는 지난해 여름 즈음부터 시나리오를 준비한다며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는 비디오들을 모아왔다. <살인자의 해부>도 그 수집의 연장일 듯했다. Y가 모아둔 20여편의 비디오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현기증> <레베카> <소름> <화녀> <공동경비구역 JSA>…. <하얀 탑>과 <살인의 낙인> 정도가 눈에 들어왔다. ‘살인을 소재로 하는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고작 20편 정도밖에 못 모은 걸까’ 의아해하는 내게 Y는 아래칸을 보라고 했다. 몇권의 책과 비디오가 눈에 띄었다. <법의학 입문> <해부학실습> <비교 동물해부> <Body Worlds> (인체의 신비展 카탈로그)…. Y는 의문사에 관한 시나리오를 쓰던 중 조금씩 해부학과 법의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 Y가 죽음의 종류를 개체사, 장기사, 세포사 등으로 나누고 법의학과 병리해부학 개론을 더듬거릴 동안 내 시선은 다시 위칸의 비디오로 향했고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멈췄다. 허원근 일병의 의문사가 떠올랐다. 최근 국방부 특조단은 술취한 선임하사가 쏜 총에 맞아 허 일병이 사망했다는 의문사진상규명위의 결론을 부인했고 의문사위원회에 진실을 털어놓은 병사들의 증언을 일일이 번복하는 것으로 일관해왔다. <살인자의 해부>는 알려진 대로 찜찜한 영화였다. 변호사는 살인용의자가 아내가 강간당해 불가항력적 충동에 사로잡혀 일종의 정신질환 상태에서 범행을 했다고 설득함으로써 무죄판결을 끌어낸다. Y는 내가 국방부 때문에 불가항력적 충동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이지윤/ 비디오칼럼니스트 emptyba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