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연도 2002년광고주 SK텔레콤제품명 준(June)대행사 TBWA
‘제2의 선영’이 나타났다.2000년 대단한 파급효과를 거둔 여성포털사이트 마이클럽의 ‘선영아 사랑해’ 광고에 이어 이번엔 준(June) CF가 잠자는 소비자의 코털을 건드렸다.
아직 캠페인 초기 단계에 불과해 반응의 높낮이를 확언할 수 없지만 마이클럽이 ‘선영아 사랑해’란 알쏭달쏭 벽보 광고로 그랬듯이 ‘준’도 궁금증을 증폭하며 기선을 제압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 CF는 개봉박두의 기대감을 자극하는 예고편처럼 론칭에 앞서 선보인 티저(teaser) 광고다. 티저 광고답게 광고주, 제품명에 대한 정보 등을 극히 제한한 채 준이란 화두만 덩그러니 던져놓았다.
‘어느 날 우연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준을 만났다’란 문구와 이 말대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이름없는 모델이 광고의 주요 구성요소.특기사항은 화면을 하얀 여백과 모델의 행동을 보여주는 일반 영상으로 분할했다는 점이다.빈 공간은 카피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 만난 것으로 지시된 ‘준’이 위치해 있는 곳으로 베일의 효과를 살리고 있다.
광고가 방송을 탄 지 보름여가 지나면서 준의 기본 정체는 공개됐다.이동통신업체인 SK텔레콤이 선보이는 새 브랜드, 좀더 구체적으론 제3세대 이동통신이라 불리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EV-DO’서비스브랜드가 준이다.‘EV-DO’는 동영상 콘텐츠 등을 제공하는 첨단 서비스를 지칭한다.
‘티저’란 광고 전문용어가 많은 이들에게 일반어로 친숙해진 데에는 앞서 언급한 ‘선영아 사랑해’의 마이클럽 광고를 비롯해 SK텔레콤의 TTL CF 같은 대박 사례가 크게 기여했다.또 이에 힘입어 숱한 신규 브랜드가 티저 광고란 배앓이 단계를 거쳐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더이상 티저 광고가 그리 놀랄 만한 마케팅 전략은 아닌 것이다.티저란 타이틀이 무색하게 ‘그래서 뭐 어떻다는 거야’란 소비자의 심드렁한 표정만을 목격한 채 쓸쓸히 퇴장한 실패의 예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준 광고는 ‘쟤, 뭐야’란 개인적 질문으로 시작해 화젯거리로 여러 사람에게 공유되는 행복한 과정을 경험했다.티저의 원뜻대로 소비자를 약올리고 애태우는 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아무래도 적극적인 반응을 유도한 비결은 ‘물음표’를 잘 배치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CF를 처음 만났을 때 광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열쇠는 ‘준’이란 외자뿐이다. 준은 얼핏 사람 이름 같다.여백 뒤에 숨은 준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로 반기는 모델의 표정도 준이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이상형의 이성일지 모른다는 추측을 자아낸다.
단박에 입과 귀에 착착 달라붙을 만큼 쉽고, 애칭 같은 친근함이 묻어나는 한마디 글자를 브랜드화한 것이 일차적인 호기심을 유발하는 데 적중했다.또 의인화한 브랜드에 걸맞게 준을 사람으로 오인하게끔 유도한 문구와 모델의 행동도 자연스러운 함정이었다.그뒤에 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밌다는 듯 웃고 있는 광고 속 청춘 남녀의 모습은 즐겁고 유쾌하며 언제나 함께하는 문화브랜드를 표방한 준의 속성을 함축적으로 예고하며 복선의 기능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결론적으로 정교한 전략적 기반이 뒷받침된 티저 CF랄 수 있다.
이동통신브랜드가 숫자에서 영문 이름으로 세분화할 무렵 탄생해 광고사에 진한 족적을 남긴 TTL CF는 이름부터 내용까지 온통 수수께끼투성이였다.당시엔 TTL 스타일이 젊은 세대를 파고드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제는 그것도 한물간 얘기가 됐다.TTL 광고에 비해 편안한 양념이 듬뿍 쳐진 준 CF의 인기는 쉽게 말걸기가 유행한 올 광고계의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또 토털시스템을 가동한 티저 전략도 두드러진다.준이 궁금한 브랜드로 파장이 인 데는 CF만의 힘은 아닐 것이다.‘선영아 사랑해’란 소박한 벽보로 시작해 TV로 광고의 단계를 높여간 마이클럽과 달리 준은 CF, 전면 신문광고, 길거리 플래카드, 티저 웹사이트 등 전 매체를 총동원한 융단폭격으로 소비자의 이곳저곳을 쿡쿡 찔렀다. 그 사이 광고주를 비롯한 대행사는 ‘당신네 작품이지’를 묻는 질문에 오리발 혹은 묵묵부답으로 쉬쉬하며 소비자의 반응을 즐겼다. 한마디로 화려한 ‘티저의 쇼쇼쇼’가 펼쳐진 셈이다.
하기야 준은 대기업의 야심작이자 수백억원대의 극비 프로젝트다.소규모의 광고비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게릴라 전법을 사용하는 벤처기업의 사정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미 광풍 같은 이동통신사의 마케팅 공세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소비자들 가운데 일부는 준의 정체를 안 뒤 만만하게 지분거림을 당했다는 역반응을 보이는 눈치다.지금도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진군해 시야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있는데 본격적인 론칭 시점부터는 얼마나 엄청난 기세로 소비자를 압도할 것인가.솔직히 기대감이 드는 한편으로 겁도 난다.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