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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아픔에 손을 내밀다, <밀애> 배우 윤다경
최수임 2002-11-20

‘쉼터’의 여주인, <밀애>의 은연은 강렬한 인물이다. 남의 차를 얻어타고 집에 온 딸에게 거칠게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칼부림을 하는 남편에게 옷이 찢긴 채 피를 흘리며 뛰쳐나오는 그녀의 존재는, 주인공 미흔의 상처를 참 작게 보이게 한다. ‘이런 게 바로 고통이다’라고 그녀는 온몸으로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미흔의 머리를 감겨준다. 참 불쌍하면서, 참 이상하면서, 참 따뜻한 여자다. 그런데 그 느낌은 상당 부분 캐릭터에 대한 사실적 설정이 아닌, 그를 연기한 배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듯 보였다. 은연을 ‘그렇게’ 연기한 배우는 어떤 사람일까. 윤다경이라는 배우를 만나는 건 호기심나는 일이었다.

윤다경은 인터뷰하러 오는 길에 손수 작성한 석장짜리 이력서를 들고 왔다. “저에 대해 잘 모를 것 같아서요.” 그녀의 목소리는 걸걸하면서 또렷했다. 연극을 해 본 목소리였다. 예상대로 그녀의 이력서는, 신인 영화배우 윤다경이 7년차 연극배우임을 말해주었다. 종이 한장을 가득 메우고 남는 출연작들…. 그녀는 이화여대 독문과를 나온 뒤 학교 영화동아리에서 시작한 연극을 본격적으로 하다가 1년간 독일 베를린의 ‘테아터 살푸리’ 극단에서 활동한 뒤 한국에 돌아와 유시어터 소속배우로 연기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작은 영화란에는, 고은기 감독의 단편 <액체들>과 <밀애>가 필모그래피로 적혀 있었다.

<밀애>에의 캐스팅은, <액체들>이 다리를 놓아주었다. <액체들>을 보고 그녀를 ‘발견’한 변영주 감독이 유시어터 홈페이지 게시판에 ‘이름모를’ <액체들>의 배우를 찾는 글을 띄우고, 윤다경이 “어, 나네” 하며 화답했던 것. “되게 매력적”이던 은연 역을 윤다경은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민은 곧 시작됐다. “시나리오를 보고 나만의 ‘은연’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정경순 선배나 방은진 선배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캐릭터인데, 그와는 다른 인물을 표현하고 싶었죠. 심지어는 말더듬이 은연을 해보기도 했어요.” 이런 윤다경의 고민에 변영주 감독은 은연의 첫 촬영 전날, “은연에게서 세상 모든 여성들의 아픔이 보여져야 한다. 아주 깊이있는 아픔이… 퉁명스럽고 이기적이고, 그래서 한 번 마음을 주면 깊은 그리고 쑥스러운 정을 주게 되는 모습이 보여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적힌 편지로 ‘답’을 암시해주었다.

윤다경이 표현해낸 은연이라는 여자는, 과연 정경순이나 방은진이 표현했던 유의 ‘밑바닥 여자’와는 또 다른, 조금은 더 약하고 조금은 더 광기어린 그런 모습으로 완성됐다. 신인 영화배우로서 그녀의 신고식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그녀의 다음 작품은 이라는 연극. 19살 청년과 80살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에, 그녀는 청년의 어머니가 소개시키는 세명의 아주 다른 여자들을 1인3역으로 연기한다고 한다. <니키타>나 <파니 핑크> 같은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윤다경의, ‘은연’과는 또 다른 여러 모습을 미리 보고 싶다면 그 연극을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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