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의 오랜 필자였던 김규항씨에게 메일을 보내 여기에 글을 쓰게 됐다는 소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답장이 왔다.
… 건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데리고 사슴벌레를 사러 갈 생각입니다. 지난해부터 노래를 부른 건데 하필 오늘인 이유는 아무래도 아침에 제가 엉덩이를 한대 때려주었는데 그게 미안해서입니다. 지 누나가 읽기책을 빠뜨리고 갔다며 급히 갖다달라고 전화가 왔기에 10분 안에 다녀오겠다고 나서는데 혼자 있기 싫다고 울며 떼를 썼습니다. 엉덩이를 한대 때려주고 결국 옷을 입혀 데리고 갔지요. 기다리던 단이는 집으로 달려오고 서로 엇갈릴 뻔하다 간신히 만나고…. 하여튼 결국 데리고 갈 것을 제가 잘못한 것이지요. 유치원에 보내며 아빠가 잘못했다고는 했는데 혼자 앉아 있으려니 제 인격이 한심해서 괴롭기 그지없습니다. 글로 누군가를 비판할 땐 나름대로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면서(누구도 그렇게 봐주지 않는 편이지만) 아이한테 그렇치 못한 건 위선일 겁니다….
개인적인 편지를 본인 허락도 없이 이렇게 공개하는 이유는 김규항씨의 열렬한 팬이었을 <씨네21>의 독자들에게 그의 진면목()을 알려주려는 애프터서비스 차원이기도 하지만 실은 그의 편지를 읽으면서 상당히 즐거웠고 많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홍승우씨가 그리는 비빔툰을 보듯, 여느 아빠와 다름없이, 김규항씨가 아이문제로 몸과 마음이 우왕좌왕하였을 광경이 선연히 떠올라 저절로 웃음이 났다. 세상을 향해 한 문장 한 문장을 날이 선 비수를 벼리듯 글을 쓰는, 한때는 폭주족이었다고 슬며시 한 가락 한 과거를 내비치기도 하고, 마초임을 세상에 천명한 적도 있는 그가 조그만 녀석들에게 휘둘리며 초등학교 읽기 책을 들고 뛰는 모습과 유치원 다니는 아들에게 쩔쩔매며 사슴벌레 사러 가는 모습이 통쾌하지 않은가. 아빠노릇을 할 때면 평소 자신의 신중함이 적용되지 않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는 모습은 진정 그답지 않은가.
지금 50대 이상 세대의 아버지들이었다면 아이가 등교하면서 준비물을 챙겨가지 않았을 때 학교에서 벌을 서거나 매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나쁜 버릇 들이지 말라며 준비물을 가져다 주지 못하게 호통을 쳤을 것이다. 엄마가 아이들이 두고 간 도시락을 갖다주기 위해 뛰어나가더라도 애들 버릇 나쁘게 키운다고 힐난을 하고 앉았을 뿐 꼼짝도 안 했을 것이다.
자식들 앞에서는 아무리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도 평상심을 잃게 된다. 아이가 엉덩이를 때리는 것으로 제압이 되지 않는 시절이 오면, 자식과 가치관의 차이로 심각하게 부딪쳤을 때 부모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가끔 나의 아들문제에 대해 점잖게 조언을 해주는 김규항씨가, 또 비빔툰처럼 살가운 요즘 아빠들이, 그런 시절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할는지 두고보는 것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돌아가신 지 몇년 되었지만 신영복 선생의 부친이자 유학자이신 신학상 선생은 “사람은 그들의 부모보다 그들의 시대를 닮는다”고 하신 적이 있다. 사람은 시대와 사회의 산물 이상일 수는 없다는 뜻일 게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가, 시대를 뛰어넘어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를 만들어가는 것은, 다음 세대들이 닮았으면 좋을 그런 시대를 만드는 것은, 각자의 세대가 처한 절실한 책무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선주/ <한겨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