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치렀거나, 치렀다고 착각하기도 하는 사랑의 열병! ‘사랑의 열병’이라는 표현만큼이나 유치하지만 그래도 깐에는 목숨을 건 도약이었다. 물론 지나고나면 목숨을 걸지도 않았고, 도약한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자기 욕심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지만 말이다. 이번주 독립영화관(KBS2TV 금 밤 12시50분)에서 보게 될 <날씬한 고백을 원하십니까>(최선정 연출/ 16mm/ 컬러/ 30분/ 2002년)는 그런 ‘사랑의 열병’에 관한 영화다. 스물두살의 여대생 현영에게는 성욱이라는 말 안 듣는 남자친구가 있다. 현영은 성욱과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지만 성욱이 좋아하는 여자는 따로 있다. 다른 여자에게 매달리는 현장을 목격하거나 자기와의 약속을 어기고 다른 여자와 다정하게 거닐고 있는 꼴을 보는 현영의 속은, 속이 아니다.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 둘의 관계를 그린, 그래서 예쁜 이 영화의 플롯에는 다른 것도 끼워져 있다. 곧 실업자가 될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그것이다. 현영은 분한 맘으로 밤새 뒤척이고 새벽 거리에서 성욱의 뺨을 때리고 돌아서 오다 아버지를 만난다. 이후 그럭저럭 영화는 평온한 관습적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소재를 문제화하는 데까지는 나아갔으나 문제의 본질을 향한 열병은 앓은 것 같지 않다. 목숨을 건 도약은 아니고, 그저 그런 영화 욕심이었던 셈이다. 이효인/ 영화평론가 yhi60@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