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One Less, 1998년감독 장이모출연 웨이민치MBC 11월17일(일) 밤 12시25분
“수업은 해의 그림자가 저만치 오면 끝내면 된다구.” 마을 어른의 이야기에 웨이는 깜짝 놀란다. “해가 보이지 않는 날은 어쩌란 말이죠” 답은 어렵지 않다. “그거야 수업을 일찍 끝내면 되잖아.” 장이모 감독의 <책상서랍 속의 동화>는 시골 마을에 부임한 임시교사에 관한 영화다.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소녀가 더 나이어린 아이들을 떠맡아 교육하게 된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착한’ 영화를 연상케 하지만 <책상서랍 속의 동화>는 장이모의 전작 <귀주이야기>(1992)와 더 흡사하다. 도시와 농촌이라는 대립항을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감독이 중국사회의 리얼리티를 포착하는 데 여전히 골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골 교사가 자리를 비우게 되자 촌장은 임시교사를 마을에 데리고 온다. 13살 소녀 웨이는 아이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없지만 촌장으로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웨이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도시로 떠나려는 아이들을 붙잡는 데 더 열심이다. 월급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장휘거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가자 웨이는 아이에 대해 걱정한다. 돈을 마련한 웨이는 장휘거를 찾기 위해 도시로 향하지만 아이를 만날 수가 없다. 웨이는 장휘거를 찾기 위해 고심한다.
<책상서랍 속의 동화>는 동화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웨이가 가르치는 학급 아이들은 무엇보다 분필의 소중함을 역설한다. 그만큼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마을에서 살고 있다. 마을 아이들은 하나둘씩 학교를 그만두고 도시로 향한다.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함이다. 장휘거라는 말썽꾸러기 역시 같은 길을 밟는다. 어머니가 병들자 아이는 홀로 도회지로 가서 노동해야 한다. 영화는 중반까지 교훈적인 어조를 숨기지 않는다. 돈과 노동의 중요성, 그리고 코카콜라라는 자본주의의 상징이 스며들기 시작한 중국사회의 현실에 대해 계몽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다. 웨이는 아이들에게 돈을 헤아리고 계산하는 법, 노동의 대가에 대해 알려준다. 영화가 차츰 생명력을 얻는 것은, 웨이가 장휘거를 찾기 위해 도시로 떠난 이후다. 거리에서 노숙하는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장이모 감독은 여전히 정서적 힘을 지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연출자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건 장이모 감독이 최근작에서 흔히 사용하는 ‘추적’, 즉 “잠깐만요!” 장면이다. 길을 달리는 자동차, 그리고 차를 뒤쫓는 인물의 시점숏을 <책상서랍 속의 동화>에서도 되풀이한다. 이는 현실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을 비유하는 것은 아닐는지. <책상서랍 속의 동화>는 어느 스승과 제자에 관한 영화이자 젊은 감독들에게 퇴물로 취급당하는 5세대 감독의 고민을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