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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광고대상 하이마트 시리즈
2002-11-06

`망가진` 오페라,잊을 수 없네

제작연도 2002년광고주 하이마트 대행사 커뮤니케이션 윌 제작사 광고방

얼마 전 발표된 2002 대한민국 광고대상 수상작 리스트를 보고 약간 뜨끔했다.이 지면에 초대하지 않은 광고가 리스트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국내 최고 권위의 대한민국 광고대상(한국광고단체연합회 선정)에서 올해 영예의 대상을 받는 작품은 다름 아닌 하이마트 CF시리즈다.수상결과를 놓고 현재 광고계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쪽과 뜻밖이란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작품 자체의 질보다 소비자의 반응에 더 채점의 주안점을 둔 게 아니냐는 좀 뜨악한 시선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어쨌거나 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이다.또 최고 광고란 칭호를 얻은 하이마트 CF는 올 광고계의 경향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가늠자일 것이다.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 광고의 힘을 반추해야 할 것 같다.

전자양판점인 하이마트 광고는 이전에도 시트콤 등 다른 장르의 틀을 빌려와 소비자의 시선 사냥을 노렸다.그러나 본격적으로 지명도를 얻은 것은 노래로 말하는 ‘학교’편에서 비롯했다.‘학교’편은 뮤지컬 배우로도 명성 높은 유준상과 성악도 출신인 김현수를 남녀 모델로 내세워 ‘오페라CF’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선생님인 유준상과 김현수가 학교에서 남몰래 마음을 주고받다가 학생들에게 ‘딱 걸린다’는 내용을 담았다.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한 대목에 ‘시간 좀 내주오, 갈 데가 있소’로 시작하는 가사를 달아 이를 남녀모델이 성악가처럼 부르며 대화를 나눈다는 게 이채로운 CF였다. 방송시간이 15초로 지극히 짧고, 일정기간 반복 시청도 가능한 것이 광고다.그럼에도 어느 CF의 카피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복기하라고 주문하면 자신 없어진다.그러나 낯익은 멜로디에 실린 대사는 기억에 쏙쏙 박혔다.‘학교’편의 노래말은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게 되는 유행가처럼 소비자의 입에 실리며 단박에 높은 인기를 끌었다.

‘학교’편의 히트에 힘입어 오페라 CF의 옷을 입은 후속작이 줄지어 탄생했다.‘고수부지’편, ‘처제’편, ‘수지큐’편 등이 그것인데 시리즈답게 유준상과 김현수가 모델로 등장하고, 노래로 말하며, ‘하이마트로 가요’로 마무리한다는 구성을 공통적으로 취했다.스토리도 연속극처럼 꼬리를 물었다.‘학교’편에서 하이마트에 가 혼수를 준비하자는 프로포즈로 결혼에 골인한 유준상과 김현수는 ‘고수부지’편에서 열대야 때문에 고생하는 신혼부부로 나와 하이마트에서 에어컨을 사자고 소비자에게 말을 건넸다.‘처제’편은 유준상 처제의 예비신랑을 집에 초대하는 에피소드로 다시 한번 ‘혼수준비는 하이마트에서’란 메시지를 알렸다.현재 방송을 타고 있는 ‘수지큐’편에선 유준상의 어머니로 사미자가 출연해 아들 내외가 권하는 김치에 대해 ‘오~ 시었어’, ‘오~ 안 익었어’를 노래하며 김치냉장고를 하이마트에서 사자는 얘기를 전하고 있다.

‘학교’편은 막을 내린 지 6개월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 가사가 귀에 선하다. 빠른 파급력에 긴 생명력은 이 CF의 호소력이 얼마만큼 강렬한지 알려준다.대한민국 광고대상의 심사평에는 ‘오페라라는 참신한 형식으로 소비자에게 쉽게 접근한 점을 높이 샀다’고 이 CF를 대상작으로 선정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소비자의 기억세포와 직거래할 수 있는 틀거리를, 그것도 남이 시도하지 않은 것을 착안했다는 사실은 실로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그러고보니 하이마트 CF처럼 올해에는 골치 아픈 해독의 장치를 철저하게 무시한 광고가 인기였다.한 박자 늦게 ‘아하!’란 감탄사를 내뱉게 만드는 함축적 묘미나 동공을 넓히는 첨단 영상장치 같은 게 별반 빛을 발휘하지 못했다.연기, 연출 등에서 아마추어 같은 투박한 냄새를 풍기는 재연프로그램이 유행이듯 광고도 뻔하고 쉽게 오락적 요소를 살린 것이 호응을 샀다.특히 코미디언의 유행어처럼 따라 즐길 수 있는 카피 등을 담는 것은 수많은 광고 가운데 살아남는 비결이었다.

하이마트 광고가 좀더 특별하다면 그것은 호감을 사는 유치 전략 이상의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닭살스러운 노래말과 스토리, 모델의 과장된 코믹연기 등 하위문화의 요소를 이웃이라고 하기엔 너무 먼 오페라라는 고급 장르에 거침없이 교배한 이 광고는 고급 취향을 향한 은근한 조소와 한계없는 자유로운 사고를 엿보이며 뒷맛을 곱씹어보게끔 유도한다.아쉬운 점은 그런 맛이 ‘학교’편 이후 갈수록 바래고 있다는 것.백지에 새로운 그림을 채워넣은 것 이상으로 기본 밑그림이 있는 상황에서 변화를 가하는 게 힘들어서일까.‘수지큐’편의 경우 형식에 대한 자신감과 잔재미를 추가하려는 욕심이 과해 김치냉장고 광고인지 하이마트 광고인지 헷갈리는 본말이 전도된 메시지를 전달하며 비호감의 개그 CF에 그쳤다는 인상을 준다.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