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시간이 짧은 영화일수록 승부를 걸 일은 더 많아진다. 플롯으로 짜여진 서사 정보의 촘촘함이 없다면, 끝까지 정보를 숨기다가 마지막에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든지 아니면 마지막 반전을 통해 관객에게 쾌감을 주는 방식 등을 취해야 한다. 장편영화처럼 목적이 명확하지 않아도 허용되는 장면의 비율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이 아닐 때는 에피소드 나열형으로 가는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경우에 등장인물의 매력은 필수적인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말은 드라마를 취하는 영화의 경우에만 해당된다. 이번주 독립영화관(KBS2TV, 금요일 밤 12시50분)에서 방영할 <안다고 말하지 마라>(송혜진 연출, 16밀리 컬러, 31분, 2002)는 드라마인 동시에 에피소드 나열형의 서사를 취하고 있다. 사건의 인과관계가 불투명한 이 영화에서 관객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인물이다. 영예로울 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는 편견 즉 한국 최고의 고루한 지방이라는 안동에서 수능을 앞두고 수학과외를 위해 서울에 온 장철이 바로 그 인물이다. 그는 독립운동가와 강직한 선생님을 존경하며, 요즘 노래를 비웃고, 남녀 편견이 있으며, 사투리에 대한 강박이 있다.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이 인물을 보면서 우리는 세상을 안심하게 된다. 그래서 장철의 사촌누나인 장주가 그를 배웅한 뒤 느끼는 ‘웬지 모를 미안함’의 정체는 드러난다. ‘놀림감이 되더라도 세상에 안심을 주는’ 인물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효인/ 영화평론가 yhi60@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