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비디오가 음악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그것이 감상자의 정서적 상상력의 범주를 제한해 버린다는 데 있다. 소리라는 비구상적 형태를 매개로 전달되는 음악의 본질적 요소들이 비디오에 의해 구체적인 영상 이미지로 노출됨에 따라 (음악적 카타르시스의 주요 구성요소인) 감상자의 주관적 해석 혹은 개인의 독자적 경험의 여지는 애초부터 제거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중은 제작자의 의도에 충실하게 반응하는 집단최면에 들게 된다.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인트로를 듣는 순간 좀비들의 군무(群舞)를 연상하거나 에미넴의 ‘Without Me’를 들을 때마다 우스꽝스럽게 패러디된 오사마 빈 라덴을 떠올리는 식으로 조건반사 작용의 피험자가 되어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곧, 레코드 회사의 시장통제 수단이 되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시장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뮤직비디오의 파괴력은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발견된다. 비디오 클립의 제작 여부가 음악적 취향에 대한 대중의 선택권이나 앨범에 대한 뮤지션의 의도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그렇다.
주지하다시피, MTV를 위시한 음악TV 채널들은 뮤직비디오를 프로그램의 콘텐츠로 삼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모든 개별적 곡들이 모두 뮤직비디오로 제작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레코드 회사들은 (마케팅 부서의 판단에 근거하여) 히트할 가능성을 가진 싱글만을 비디오로 제작할 뿐이다. 물론, 거기에 대중의 입장이 반영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뮤지션들조차도 홍보 담당자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싱글의 발매 여부가 간접적인 시장제어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레코드 회사들의 직간접적인 시장통제로부터 유리된 뮤직비디오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장기간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고수하며 최근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넬리(Nelly)의 ‘Dilemma’가 흥미로운 것은 그 때문이다. ‘Dilemma’는 싱글로 발매되기 전(당연히 뮤직비디오로 제작되기도 전), 그러니까 레코드 회사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커다란 히트를 기록함으로써 마케팅 절차의 일반적 공식을 일축한 작품이다. 앨범 ‘Nellyville’의 첫 싱글로 공개된 ‘Hot In Herre’가 여전히 차트 정상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 터져나온 ‘Dilemma’의 폭발적 반응은 사실상 방송 횟수의 적용비율을 높인 빌보드의 새로운 순위집계 방식 덕을 본 것이긴 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이 몰고올 여파이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클리어 채널(Clear Channel)의 성공사례는 그러한 전망을 긍정적으로 뒷받침한다. 미국 내 1200여개 라디오 방송국을 연결하고 있는 클리어 채널은 대중의 취향과 선택을 최우선 선곡 기준으로 삼고 (그 이름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레코드 회사와 미디어의 유착 관행에서 탈피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폭발적인 신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신흥 미디어그룹이다. 그리고 ‘Dilemma’는 그런 변화의 기류 속에 등장한 히트싱글인 것이다.
물론, ‘Dilemma’도 결국은 비디오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차트 2위로 하락하며 주춤하던 인기가 반등하여 정상을 재탈환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뒤늦게 급조된 그 비디오의 내용이 다시금 오늘의 쟁점을 상기시킨다는 점이다. 건너편 집으로 이사온 유부녀에 대한 환상을 다룬 노랫말이 비디오 속에선 젊은 남녀의 건전한 사랑 얘기로 변질되었고, 교외 백인 중산층 주택가를 연상시키는 흑인 동네와 메르세데스 벤츠를 모는 흑인 청년은 쉽게 공감하기 힘든 설정으로 시청자의 동의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적용된 영화적 요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Dilemma’의 음악적 감흥은 말쑥하고 부유한 흑인 남녀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라는 틀 속에 갇힌 채로 대중의 무의식 속에 기억될 게 뻔하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비디오 시대의 음악이 갖는 딜레마이다.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mymusic.co.kr 대표 bestles@mymus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