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게임은 사랑을 먹고 산다. 사랑하면 눈이 먼다.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소재로 만든 게임이라면 무조건 사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 한 캐릭터 게임은 계속 나온다. 어떤 게임 제작자들은 파렴치하게도 그들의 사랑을 이용한다. 캐릭터만 가져다 쓴 질낮은 게임으로 팬들의 주머니를 노린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일러스트 몇장만 나오면 대만족이고, 어떤 사람들은 얄팍한 술수에 욕을 하면서도 나올 때마다 산다. 캐릭터 게임에는 사랑이 없다. 캐릭터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캐릭터에 대한 애정은 개 꼬리털만큼도 없다. 인기있을 때 빨리 팔아치우자는 것, 이것이야말로 캐릭터 게임을 지배하는 논리다. 하지만 간혹 어떤 캐릭터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직접 캐릭터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남들 역시 그러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 아는 것을 총동원하고, 모든 열정을 바친다.
<하지메의 일보>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더 파이팅>이라는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복싱 게임이다. 가난한 환경에서도 착하게 사는 일보는 우연히 자신을 도와준 프로 복서를 통해 복싱의 매력을 알게 된다. 성실함과 진실성으로 강한 상대와의 힘든 싸움을 헤쳐나가면서 일보는 많은 친구를 얻고, 인간으로서 복서로서 점점 성장해나간다. 흔한 ‘경파 열혈 스포츠물’이지만, 생생하게 묘사되는 뜨거운 인간관계, 일보라는 착하지만 약했던 소년이 진정한 강함을 찾아나가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더 파이팅>은 60권이 넘도록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많은 복싱만화 중에서도 <더 파이팅>이 뜨거운 반응을 얻은 것은, 작가인 조지 모리카와 자신이 틈틈이 복싱경기 세컨드로 나갈 정도로 복싱을 사랑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만화로 그리다보니 뜨겁고 진실하게 표현되는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2로 나온 <하지메의 일보>의 발매원은 ESP, 개발사는 ‘뉴’다. 이 회사는 <복서스 로드>로 게이머에게 알려졌다. <복서스 로드>는 복서 성장 시뮬레이션과 실제 시합의 액션을 결합한 독특한 복싱 게임으로 플레이스테이션에서 빠질 수 없는 걸작 중 하나다. 그런데 ‘뉴’가 이 게임을 만든 이유가 ‘복싱의 즐거움, 좋은 점을 전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이게 5년 전 일인데, 이때 이들이 <복서스 로드>를 만드는 데 가장 많이 참고한 만화가 바로 <하지메의 일보>였다.
그렇게 좋아하는 복싱, 또 좋아하는 만화로 만든 게임 <하지메의 일보>는 여느 복싱 게임과 스타일이 다르다. 복싱 마니아인 제작팀이 원한 건, 화려하고 과장된 슈퍼맨들의 경기가 아니라, 살이 터지고 피가 튀는 사실적인 게임이었다. 버튼만 누르면 엄청난 속도로 주먹이 뻗는 일은 없다. 잽과 훅과 어퍼와 스트레이트는 완전히 다르다. 훅을 휘두르면 몸통이 완전히 빈다. 상대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보디 블로를 들어온다. 상체가 앞으로 꺾인다. 맞으면 맞을수록 몸이 무거워진다. 호쾌한 맛에 대전 액션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하지메의 일보>는 어색하고 답답한 게임이다. 그러나 ‘퍽’ 하고 주먹이 들어갈 때의 생생한 느낌은 몸과 몸이 마주치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메의 일보>는 행복한 게임이다. 복싱을 사랑하는 원작자에 의해 태어났고, 역시 복싱을, 그리고 만화 <하지메의 일보>를 아끼는 개발자에 의해 게임화되었다. 여기에 원작의 캐릭터성은 물론, 이 게임의 게임성까지 좋아하는 유저가 있다면, 이 사랑은 마침내 완성될 것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