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여름방학 때였던 것 같다. 어떤 계기였는지 몰라도 외할머니와 함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영화를 보여달라고 졸랐을 것이고 일이 있으셨던 어머니 대신에 외할머니와 함께 가게 된 거겠지. 영등포 연흥극장에서 봤던 그 영화. 바로 <슈퍼맨>이다. 이날 느꼈던 감동이 얼마나 컸던지 당시 나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오늘 할머니랑 영화를 보았다. 제목은 <슈퍼맨>이었다. 슈퍼맨은 정말 힘이 세다. 그리고 하늘도 날아다닌다. 슈퍼맨이 악당들을 혼내줄 때는 정말 통쾌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었다. 왜 사람들은 슈퍼맨이 안경을 쓰면 못 알아볼까 나도 커서 슈퍼맨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이 부분은 어린이 세계명작동화의 책임도 있다).
아무튼 초등학교 때의 일기나 독후감 등을 보면 항상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났던 것 같다. 심지어 <햄릿>을 읽고 쓴 독후감의 마지막 문장 역시 ‘나도 햄릿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였으니….
<슈퍼맨>을 본 나의 생활은 자연스럽게 슈퍼맨화되었다. 집안의 빨간 보자기를 뒤집어쓰고서 우리 집 옥상에서 건너편 옥상으로 날아()다닌다거나 숟가락을 휘고, 또 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버스를 따라잡으려 달음박질을 하고…. 하지만 이 슈퍼맨 놀이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보자기를 두르고 지구를 구하던 나에게 동생이 쓱 다가와 뭔가를 내민다. 그것은 나의 유일한 약점인 클립톤의 파편, 다름 아닌 구슬치기할 때의 파란 구슬이다. 순식간에 힘을 잃은 나는 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하고 동생은 사악하게 웃는다. 나는 동생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동생. 나는 마지막으로 박카스 한병을 제시한다(우리 집은 약국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동생은 구슬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러면 나는 다시 지구를 구하러 날아가고 동생은 박카스를 마시며 착한 사람이 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와 동생 모두에게 이로운 일석이조의 게임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철이 들면서 슈퍼맨은 단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슈퍼맨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마치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는 것처럼….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슈퍼맨과 산타클로스가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는 세상이 될까 일년 동안 울지만 않으면 크리스마스엔 뭐든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험한 일이 생기면 슈퍼맨을 부르면 된다. 그는 일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돌 수 있다. 만에 하나 바빠서 조금 늦게 도착했다 해도 지구를 거꾸로 돌리면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는 육체뿐 아니라 정신력도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의 복장을 보면 알 수 있다. 보통 사람이 입고 나가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게 뻔한 파란 쫄쫄이 내복을 입고, 그것도 모자라 바깥에 빨간 팬티를 덧입었다. 거기에 마스크를 하지 않은 맨 얼굴이라는 게 중요하다. 볼 테면 보라는 대단한 배짱…. 이런 복장을 당당하게 입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슈퍼맨과 수다맨밖에 없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웅들 중 가장 촌스런 패션을 한 그는 역으로 가장 강한 영웅이라 할 수 있겠다. 아, 원더우먼을 빼먹었네. 그녀의 머리에 사뿐히 놓여진 금관이 생각나시는지….
생각해 보니 그는 없으면 안 될 사람이다(산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안 당하고 살아야 울지도 않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의 존재를 다시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 그는 어디 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미국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9·11 때 그가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잠깐 다른 별에 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혹시 다시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자신의 능력을 포기했을까 그럴 리는 없다. 큰일을 할 사람이 사랑놀음에 빠져선 안 된다는 걸 2편에서 깨달았을 테니. 그럼 지금 그는 어디 있을까
슈퍼맨! 도와줘요! 여기도 좀 봐줘요! 땅덩이가 작다고 무시하는 거예요 여기서 당신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는 지금 어디 있는 걸까. 바로 내 옆에 있는데 내가 못 알아보는 건가 단지 안경 하나 때문에 못 알아보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