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 밖 전쟁, 일상 속 상처
1999년, 감독 밥 클라크 출연 할리 조엘 오스먼트 장르 드라마 (브에나비스타)
세계대전의 전운이 전세계를 뒤덮은 1942년. 직접적인 전쟁의 화마를 피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주변마을은 비교적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라디오에서 일본 전함이 미국 서부해안에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애국심에 충만한 마을 주민들은 적국의 낙오병을 잡기 위한 일대 소란에 빠진다. 실재했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 <아일 리멤버 에이프릴>은 치열한 전장이 아닌 그 외곽에서 벌어지는 전쟁영화이며, 총알과 폭격 대신 사람들의 일상심리까지 작용하는 공포와 적대, 편견 속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전쟁과 상처를 묘사하는 영화이다.
조용했던 마을에 일본 군함에서 낙오된 적국 병사가 숨어들어오고 그를 잡기 위한 FBI와 마을 주민들의 불타는 애국심과 증오심은 극에 달한다. 그런데 적국의 병사를 가장 먼저 발견한 이는 10살가량의 4인방 소년들. 자신들의 비밀아지트에서 낯선 일본인을 발견한 아이들은 순간 영웅주의에 빠져 그를 고발하려 하지만 어느새 병사와의 우정이 싹트면서 갈등하게 된다. 그즈음 미국에선 일본계 미국인들에 대한 수용소 분리를 시행한다. 그러자 4인방 중 한명이었던 일본계 미국인 윌리 역시 3대째 살고 있던 자신의 집과 친구들을 떠나 수용소로 이주해가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미 스콧 힉스 감독이 <삼나무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적인 작품을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편견과 질시 속에 수난당하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묘사한 바 있다. 이 영화는 좀더 정감있고 세밀한 드라마 방식으로 전쟁이 드리운 당대 미국사회의 분위기를 그려낸다. 4명의 주인공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카메라는 전쟁이 가져온 불안과 상처 그리고 국가선전 문구에 휩쓸린 이데올로기를 지워버리고 오직 아이들의 사심없는 시선으로 낮춰진다. 물론 아이들의 시선을 무조건적인 순수함과 낙관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할리우드영화의 상투성이 없진 않지만 적어도 전쟁영화가 보여주는 적군 아군식의 이분법적 논리의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
평온한 외관을 하고 있는 마을 그 내부에 스며들어 있는 전쟁의 상처와 흔적들을 드러내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시선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 밥 클라크는 주로 감동적인 휴먼드라마를 연출해온 인물. 영화는 오래 기억될 만큼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전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감독의 잔잔한 연출력은 탁월한 편이다. 그리고 4인방 소년 중 한명으로 등장하는 <식스 센스>의 할리 조엘 오스먼트. 스타가 되기 이전에 출연한 작품이지만, 아이답지 않은 영특한 연기력은 이 영화에서도 눈에 띈다.
정지연/ 영화평론가 woodyall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