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다!사진이 살아 움직이다니
프랑스 파리 `인디언 살롱`에서 시네마토그라프 첫 공개
사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발명품 시네마토그라프가 1885년 12월28일 프랑스 파리 카퓌신가 14번지 그랑카페 지하 ‘인디언 살롱’에서 파리 시민에게 유료로 공개됐다. 이날 1프랑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관객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이 보고 겪는 실제 현실이 벽 위에서 고스란히 살아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그랑카페를 찾은 관객은 처음엔 흰 막 위에 영사된 사진을 보고 ‘뭐 별거 아니잖아’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이미 이곳에서 환등기로 영사되는 사진을 보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카페 안은 놀라움으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말들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시오타역에 들어오는 기차를 보고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의자 밑에 숨는 관객도 없지 않았다. 관객인 조르주 멜리에스는 “처음엔 옆사람에게 ‘또 그 영사기구나, 내가 저걸 써먹은 지 10년은 되는데’ 하고 말했다.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면 위에서 말 한 마리가 마차를 꽁무니에 달고서 우리쪽으로 달려왔다. 모두들 말을 잊고 입만 헤벌리고 있었다”라며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한 신문기자는 “언젠가 모든 대중이 카메라를 소유한다면, 그래서 자신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면 죽음이 가진 완결성 또한 사라질 것”이라고 예감했다. 이날 상영된 영화는 시네마토그라프로 첫 촬영한 영화 <공장문을 나서는 노동자>를 비롯, <아이의 점심시간> <바다에서 헤엄치는 사람들> <카드놀이> <물뿌리는 사람> 등 10편으로 각각의 상영시간은 1분 정도(전체상영시간 25분)다. 시네마토그라프 각각의 내용은 제목대로다.
시네마토그라프의 상영이 끝난 뒤 그랑카페를 나서는 관객의 얼굴은 새로운 발명품에 대한 흥분과 감격으로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한 관객은 “정말 놀랍다. 우리 시대 최고의 발명품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과 함께 와서 이 기적을 다시 봐야겠다”라고 말했다. 관객의 반응은 행사를 기획한 뤼미에르 형제를 한껏 고무시켰다. 사실 준비한 의자 100개 가운데 33자리만이 찬데다가, 특별 초청한 기자들도 나타나지 않아 상영 전만 해도 이 발명가 형제는 매우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러나 이날 성공에 고무된 이들은 “앞으로도 이곳에서 계속 상영회를 갖겠다”라고 밝혔다.
단신들
프랑스, 영화제작사 설립 붐
뤼미에르사의 성공에 자극받아 프랑스에 영화제작사 설립이 줄을 잇고 있다. 1896년 축음기의 판매자였던 샤를 파테는 키네토스코프 복제품을 구입해 ‘파테 프레르’를 발족시킨 데 이어, 발명가 레옹 고몽이 만든 고몽사는 1987년부터 영화제작에 들어갔다. 한편 1896년 스타영화사를 만들어 속임수 영화를 만들어온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는 1897년 파리 교외의 몽트뢰유 수 부아에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시네마는 위험한 오락
1897년 5월4일 파리의 자선 바자회에서 영화를 상영하던 도중 영사기에 불이 나 부유층을 중심으로 12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날 불은 영사기 램프의 연료 공급을 위해 사용되던 에테르가 원인이 되어 커튼에 불이 붙으면서 일어났다. 이 사건의 후유증은 적잖아서 시네마의 사회적 책임문제가 제기되었으며, ‘시네마는 위험한 오락’이라는 여론도 팽배해졌다.
뤼미에르 촬영기사 체포
1897년 1월 미국에서 눈싸움 장면을 촬영하던 뤼미에르의 촬영기사가 경찰서에 연행됐다. 경찰의 체포 구실은 허가증이 없다는 것이었다. 뤼미에르 제작진의 수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러시아에서는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 도중 벌어진 대형 참사를 촬영하던 제작진 전원이 경찰에 체포되고 모든 장비를 몰수당했다. 이로써 이날 대관식에서 난간이 무너지는 참사로 50만명의 군중 가운데 5천명이 사망하는 대소동을 담은 필름도 공개가 불가능해져 제작진을 안타깝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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