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의 감동을 일제하의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그린 <별아 내 가슴에>(1958)는 당시 <서울신문>에 절찬리에 연재되던 박계주의
장편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홍성기는 이 영화에서 김지미를 처음 만난다. 김지미는 김기영 감독의 <초설>(1958)에 출연하면서 조금씩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중이었다. 김 감독의 추천으로 그녀를 기용하게 된 홍 감독은 영화촬영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호감을 느끼고, 급기야는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열일곱의 나이차 때문에 배우로 가깝게 지내던 김동원이나 이민 등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도 많았으나, 둘은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두 사람의 결혼은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한 빅뉴스였다. 그때 김지미의 나이는 17살이었고, 그녀는 이듬해 딸을 낳았다. 김지미는 이후
홍성기의 페르소나가 되어 그의 극을 빛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활약한다. 실로 <별아 내 가슴에>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홍 감독의 가슴에
김지미라는 별이 와 박힌 셈이다.
60년대 들어 등장한 청춘영화의 특징은 특정 감독과 특정 배우가 만나 이루어진 ‘콤비 플레이’가 돋보인다는 점이다. 홍성기와
김지미, 신상옥과 최은희, 전창근과 유계선, 최인규과 김신재 등이 그러한 예이다. 그들은 하나의 흥행작으로 일순 콤비를 이루다가도 흥행성적이
저조해지면 두말없이 갈라서기도 했다. 그중에서 멜로 감독으로서 전도유망한 홍성기와 배우로서의 기질이 다분한 김지미의 만남은 실로 엄청한
파급효과를 냈고, 단연 흥행몰이에서 선두에 선다. 시대상황과 그 안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그리려 애쓴 여타의 청춘물과는 달리 홍성기는
시대적 흐름과는 무관하게 일관된 주제의식을 세련되면서도 도식적으로 그려나간다. 그의 이야기에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그는
맹목적이고 희생적인 사랑, 순애보적인 사랑을 덕목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영화로 설파하는 데 꾸준함을 보였다.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군사정권의 영화법 제정 및 영화사 통폐합 움직임은 영화계에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비록 영화산업
부흥을 정책적으로 꾀했다고는 하나 정부의 개입으로 검열이 강화되자 오히려 예술적 창작의욕은 감소하게 된다. 게다가 시대풍조나 사회적 현상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 제지당하자 영화적 관심은 서민생활을 중심으로 한 멜로드라마나 코미디 등으로 발전한다. 홍성기는 이때 ‘예술하는데 법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며 정부의 시책에 강하게 반발했다. 또한 폐지된 면세법을 다시 살릴 것을 박 대통령에게 촉구한다. 그런 홍성기의 태도는
군사정권에 눈엣가시로 여겨지고, 결국 이 일로 안양촬영소의 운영권은 홍성기의 손을 벗어나 신상옥에게로 넘어간다. 만주 시절부터 친분을 맺어온
정일권 당시 국무총리가 홍성기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신상옥과는 대조적으로 홍성기는 인간관계를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일에
서툴렀다. 특히 술을 못하는 그는 영화인이나 매스컴과의 교류에 소극적이었고, 원활치 못한 처세술로 인해 자주 고립되는 상황에 빠졌다. 하지만
주변에서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로 그는 대가없이 후한 정을 쏟는 사람이었다. 다만 정작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할 때 등을
돌리는 사람이 많아 남몰래 속쓰린 기억이 많았을 것이다.
61년 그는 홍성기 프로덕션을 설립해 창립영화로 <춘향전>을 기획한다. 그보다 먼저 만들어진 신상옥 감독의 신필림에서도 마침 <성춘향>을
기획하고 있었다. 두 영화사의 소식이 전해지자 누가 먼저 영화를 만들어 거느냐에 일차적으로 관심이 쏠렸다. 이때 홍성기의 <춘향전>이 먼저
극장에 걸리고 간발의 차이로 신상옥의 <성춘향>이 개봉된다. 당시에는 5만만 들어도 흥행에 성공했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성춘향>은
전국 일부집계???서울아냐??? 36만 관객 동원으로 한국영화계에 신기록을 수립한다. 두 작품 다 컬러 시네마스코프였으나, ‘한국 최초’라는
수식은 열흘 먼저 문을 연 <춘향전>에 돌아간다. <춘향전>의 실패로 재정적인 어려움이 닥치자 홍성기 프로덕션은 사실상 문을 닫는다. 돌이켜보건대,
홍 감독은 가끔 나에게 “넌 나중에 흥행감독 하지말고, 작가가 돼라”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곤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는 깊이가 부족하다고,
그러면서도 흥행에 대한 불안감이 늘 존재한다고 말해왔다. <춘향전>도 시간의 부족과 라이벌 의식 때문에 쫓기다시피 만든 작품이었다. 그렇게
두 멜로 거장의 충돌은 홍 감독에게 크나큰 상처를 입히고 끝이 난다.
구술 심우섭/ 영화감독·<남자식모> <운수대통> 등 다수 연출
정리 심지현/ 객원기자 simssisi@dreamx.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