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pt. 28
‘저거 네가 붙였니’ 하는 표정들이다. 링컨센터의 앨리스 튤리 홀(Alice Tully Hall)에서 치러진 <취화선>의 프리미어. 임권택 감독님의 무대인사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떡’ 하니 등장하는 키노 인터내셔널의 소박한 로고를 보자 동료들이 술렁인다. 민첩한 액션의 당사자는 도널드 사장님. <취화선>의 미국 내 배급 계약이 이뤄진 직후, 조그마한 로고 필름을 들고 직접 영사실로 뛰어들어간 것이다. 뉴욕의 독립배급사들에 <뉴욕타임스> <빌리지 보이스> <타임아웃>의 리뷰가 몇만달러짜리 아니 그 이상의 값어치를 가지는 홍보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뉴욕영화제의 프리미어야말로 놓쳐서는 안 될 홍보의 시발점이다. 어제 나온 <뉴욕타임스>의 다소 맹맹한 리뷰에 안 그래도 심사가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은 키노였지만, 기립박수로 끝난 상영은 도널드 사장님의 얼굴에 미소를 선사한다. “Are you still with us, Jenna” “Yes…”라고 답했지만 “전 이제 다음달이면 돌아가야 해요, 도널드.”
>> Sept. 30
<취화선>의 개봉극장이 ‘링컨 플라자 시네마’로 예정되었단다. 예술영화, 외국영화의 천국이라는 뉴욕도 극장 잡긴 쉽지 않다. 그러니 아주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고양이를…> 때 극장과 개봉일이 일찍 확정되지 않아 애먹었던 홍보팀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고양이를…> 홍보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오늘은 각 아시아/한국 관련 영어 웹사이트에 홍보협조를 부탁하는 메일을 보내고 있다. 한 사이트씩 <고양이를…>의 사이트 배너가 링크될 때마다 기쁨은 두배가 된다. 뉴욕의 아시안-아메리칸영화제는 아시아영화의 크로스 마케팅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고 이번에 2천개 정도의 메일링 리스트를 제공했다. 이 리스트와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 ‘코리아 필름 포럼’(Korea Film Forum) 등에서 얻은 메일링 리스트, 그리고 이번에 내가 모은 자료들은 <취화선>의 개봉을 위한 요긴한 실탄이 될 것이다.
>> Oct. 1
존 세일즈 감독의 제작/배급사 ‘아나키스트 컨벤션’(Anarchists’ Convention)을 찾았다. 딱딱한 이름에 경직되긴 했지만 일전에 파티에서 잠깐 마주친 제작사의 일원, 수잔 케레스코가 맞아준 사무실은 매우 단정하고 활기에 차 있었다. 지금 이 사무실에서는 여기저기 흩어져서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는 작품들의 판권을 되찾으려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존 세일즈 회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일단 4편의 작품들로 그 시작을 열었단다. 많은 작품들이 그렇지만 특히 독립영화 감독들의 경우, 그 배급권나 판권이 워낙 갈래갈래 나뉘어 있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작품 상영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는 경우에도 뭐라 딱히 답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건 하틀리 감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존 세일즈는 직접 인력과 비용을 들여 자신의 영화들의 판권을 되찾아 영화를 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연결시킬 수 있게 하려고 한단다. 감독이 주도가 되는 독립영화의 새로운 배급 방식을 접하고 왜 그를 ‘독립영화의 대부’라 부르는지 이해가 됐다. 독립영화는 필요로부터 시작한다.
(왼쪽부터 차례로)▷▶ 독립영화의 대부라 불리는 존 세일즈의 제작사 내부.▷▶ 링컨센터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필름 소사이어티 내부의 아카이브.▷▶ 아, 뉴욕의 여름은 이렇게 가는구나.
>> Oct. 2
키노에서의 마지막날이다. <고양이를…>의 개봉을 보고 오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리고 <취화선>의 개봉과 더불어 좀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텐데. 나의 빈자리를 메울 친구는 다름 아닌 루카스. 올해까지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일하던 친구인데, 감독주간의 대표가 경질되면서 이래저래 마음고생이 많아 두달간 뉴욕에서 쉬기로 결정하고 그동안 키노에서 일하기로 했단다. 아, 세상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를 칸에서 본 것이 불과 몇달 전이었는데. 아마 그는 키노에서 프랑스영화를 옹호하는 확실한 지원자가 될 것이다. 정말 키노는 본의 아니게 ‘인터내셔널’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인사를 하려고 들렀는데 뜻밖에 주어진 카드와 선물. 사무실 동료들 모두가 덕담을 한마디씩 적어 주었는데 은근히 감동적이다. 이 차가워 보이는 뉴요커들에게서 우정을 느끼다니. 깍쟁이 마케팅 팀장 캐서린, 웃음소리가 일품인 마이크, 직원들이 만날 말투를 흉내내는 배급 담당 게리 아저씨, 늘 커피를 날라주던 제시카 아줌마, 그리고 지루해지면 내 책상으로 찾아오던 히요이, 수줍게 인사하던 비디오 파트의 브라이언, 그리고 노익장을 과시하는 도널드 사장님, 그리고 약간 왕따당하던 고객 관리부서 니콜라스 아저씨까지. 독립영화를 배급하느라 이들과 더불어 보낸 흥미로운 뉴욕의 여름을 잊을 수 있을까.구정아/ 인디스토리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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