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영화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고, 또 다른가 하면 비슷한 장르다. 지금처럼 차세대를 이끌 미디어로 주목받기 전부터 많은 영화감독들이 게임에서 영화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오시이 마모루는 <공각기동대> 이후 <산사라 나가>라는 게임 제작에 뛰어들었다. 곳곳에 자리잡은 기괴한 발상이나 캐릭터 디자인은 매력적이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다소 평범한 스타일의 롤 플레잉 게임이었다. 그뒤 영화 <아발론>으로 이번에는 게임을 영화에 응용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클라이브 바커는 <나이트 브리드>로 영화감독, 소설가, 화가, 피겨 디자이너 등의 긴 직업 리스트에 게임 제작자를 보탰다. 안타깝게도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후 좀더 전면적으로 개입한 <언다잉>으로 대단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어도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히노 히데시는 만화가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도 출시된 <장육의 기병>은 온몸에서 피고름을 쏟아내는 괴물로 태어난 존재의 징그러우면서도 처연한 삶을 그린 만화다. 극단적 미학에 집착하는 그는 이 장르에서 가장 유명한 이토 준지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끔찍한 비주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단순히 말초적 흥미만을 겨냥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지면을 도배하다시피하는 벌레와 고름을 보며 속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는 영화 역시 만들었다. 물론 호러영화인데, 악명 높은 <기니 피그>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끔찍하다는 <혈육의 꽃>과 <맨홀 속의 인어>가 그의 작품이다. 이 영화들은 한때 스너프 필름으로 알려졌을 정도고, 가끔 돌아다니는 스크린숏만 봐도 웬만한 사람이 볼 영화는 아닌 듯싶다. 그가 참여하여 만든 게임이 두편 있다. 호러 사운드 노벨인 <액>(厄)과 후편인 <액통>(厄痛)이다. <액>은 폐교가 되어버린 학교에 남은 다섯 아이들이 경험하게 되는 공포를 다룬 게임이고, <액통>은 엉터리 게임으로 찍혀 사장이 자살한 게임회사의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이야기다. 두편 모두 게임으로서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히노 히데시가 손 댄 비주얼만은 사람들에게 참을 수 없는 기괴한 불쾌감과 공포감을 주기 충분했다.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지만 후카사쿠 긴지는 좀더 대중적이다. <배틀 로열>로 국내에서도 이름을 알린 그가 참여하는 작품은 호러 어드벤처 게임의 고전 <클록 타워> 시리즈의 차기작인 <클록 타워3>다. 1편은 호러영화를 짜집기한 게임이었다. <버닝>에 나왔던 것 같은 큰 정원 가위를 들고 다니는 시저 맨이 등장하고, 그를 피해 도망다니는 게 <페노미나>의 제니퍼 코넬리다. 장르의 관습을 답습하는 조금은 구태의연한 스타일이었지만 쫓기는 자의 공포감과 절박감을 실감나게 표현했고, 호러 장르 게임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3편에서 후카사쿠 감독이 맡은 역할은 전체적인 호러 연출이다. 알 수 없는 적과 공포가 쏟아져 나오는 그 흐름 자체를 책임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를 만들다가 게임에 손을 대는 경우는 있어도 반대로 게임 프로듀서가 영화를 감독하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다. 게임 제작에 뛰어든 감독들이 대개 호러 전문이는 것도 흥미롭다. 아마 공포를 극대화하는 데서 인터랙티브성이 이끌어낼 수 있는 파괴력 때문일 것이다. 역시 스크린 속에서 누군가 관뚜껑을 여는 것을 구경하는 것보다는 역시 내가 직접 마우스를 클릭해 유령의 집 문을 열면서 무엇이 튀어나올까 기다리는 게 훨씬 더 무섭다.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