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영화예비군 Y는 교양을 쌓겠노라며 미디어시티 서울 2002를 보고 왔다. 교양있는 참관기를 기대한 나에게 Y는 뜬금없이 변사얘기를 늘어놓았다. 전시회에서 Y는 바닥에 얼음 표면을 만들고 천장쪽에서 빔 프로젝터를 쏘아 마치 얼음 아래에서 사람의 알몸이 꿈틀거리듯 보이게 한 어느 작품을 보고 있었는데 안내하는 사람이 다가와 프로이트가 의식과 무의식을 빙산에 빗댄 것이 작품의 맥락이라고 알려주더라는 것이다. “아, 프로이트….” Y는 알몸의 이미지가 천장의 빔 프로젝터 (아마 초자아)에서 투사되어 얼음 표면 아래(아마 무의식)에 맺히게 만든 이유를 그 순간 이해한 모양이다. Y는 이 안내원이 영화로 치면 변사일 거라고 했다. <일본영화사>를 읽어보면 토키 이전의 일본영화에는 변사와 스크린 뒤에서 대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변사들의 힘은 막강하여 조합을 결성했다. 이들은 할리우드영화처럼 컷을 잘게 나누려 할 때 항의했고 때로는 평행편집 등을 아예 빼버렸다고도 한다. 해설의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변사들은 기존의 롱숏과 롱테이크를 고집했다. 그들은 도래하는 사운드와 몽타주, 평행편집과 클로즈업을 상대로 경쟁했던 것이다. Y는 변사를 일본과 한국 무성영화의 사운드 채널과 편집 시스템으로 보고 싶다고 했다. 스포츠 해설가는 이 변사의 마지막 계보에 포함될 것이다. 스포츠 방송은 거의 롱숏을 사용한다. 이들의 해설은 드라마를 구성하고 편집과 밀착해 있다. 결정적인 순간 지르는 “고~ 올” 소리는 클로즈업되어 감정을 폭발시킨다. ‘각본없는 드라마’는 ‘변사있는 드라마’인 모양이다. Y는 이제 광주영화제의 개막작 <아리랑> (감독 이두용, 변사 양택조)이 궁금하다고 했다.
이지윤/ 비디오칼럼니스트 emptyba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