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겪은 일 두 가지.지난주 화요일에 점심 약속이 있었다. 상대에게 내 마음얘기를 해줘야 할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당일까지도 판단이 서질 않았다. 마음을 정리도 할 겸 삼십분쯤 일찍 나갔다. 늘 약속시간을 앞두고 허둥지둥대는 나로서는 특이한 경우였다. 그가 왔을 때 어찌해야 될지 여전히 갈피를 못 잡는 사이에 삼십분이 훌쩍 지나갔다. 다시 이십분이 지나갔다. 약속을 늦을 사람도 아니고 정황으로 봐서 약속을 어길 사람은 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십분이 다시 지나도 나타나질 않았다. 조용하던 레스토랑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고 음식냄새가 피어올랐다. 어찌된 일인가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혹시, 싶어 수첩을 들여다보았다. 수첩에는 분명 수요일 12시라고 적혀 있었다. 약속장소가 우리집 근처였기에 차가 밀려 늦는가 싶어 조금 더 기다려보았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데 싶었을 때 옆자리의 주문을 받던 종업원에게 오늘이 무슨 요일인가 물었다. 철석같이 수요일이라고 믿고 있었으나 종업원의 대답은 화요일이라는 것이었다.
이번엔 일요일이다.
꼭 참석해야 할 친척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강북에 사는데 결혼식장은 강남이었다. 모처럼 강남으로 나가는 길에 결혼식에 갔다가 그 근처의 다른 볼일도 보고 올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강남 지리에 둔한 내가 운전하는 처지여서 떠나기 전에 청첩장에 그려진 약도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것도 모자라 교통지도까지 펼쳐보며 어느 대교를 건너야 할지까지 체크했다. 결혼식장에 삼십분 전에 도착했다. 늘 결혼식이 시작한 뒤에 식장에 도착하게 되는 나로서는 그것도 특이한 경우였다. 어느 회사 사옥 안에 있는 결혼식장엔 다른 사람이 결혼식을 하고 있었다. 그 식이 끝나고 다음에 하는가 싶어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삼십분 전이라고 해도 신랑이나 신부가 어딘가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 같았고 전주에서 올라왔을 친척들이 어딘가에 대기 중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내가 찾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다음 결혼식은 누구라고 써 있는 팻말도 없었다.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장소를 잘못 찾았나 싶었으나 잘못 찾을 수도 없는 장소였다. 할 수 없이 안 받기를 바라며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런데 전화벨이 몇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전화를 받질 않는가.
어떻게 된 거예요? 왜 결혼식장에 아무도 없죠 ?
결혼식은 어제였어. 일요일 아니었어요?아니야 토요일이었어. 침묵.
수화기 이편에서 내 등이 싸늘해지고 이마에 식은땀이 솟았다. 청첩장을 한번 보고 말았으면 또 모르겠다. 전날 저녁, 당일 오전, 청첩장을 몇번이나 들여다봤는데도 그랬으니. 근자엔 친구들과 건망증에 대한 얘기를 자주 나누게 된다. 뭘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는 내가 뭘 꺼내려고 했는지를 몰라 그냥 닫는 일이나 다리미 코드를 빼놓았는지 어쨌는지 기억이 안 나거나 가스레인지 불을 껐는지 여부를 가리지 못해 외출하다가 돌아와 확인하는 일 정도는 애교로 느껴진다. 하지만 내 경우는 건망증도 아니질 않는가.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수첩에는 분명히 약속시간을 6시에 표시해놓고는 약속장소에 나갈 준비를 하기 전에 수첩을 들여다봤으면서도 무슨 셈 때문인지 머리로는 7시라고 기억하고 있었던 경우도 있었고 마찬가지로 수첩에는 제 날짜에 잘 적어놓고는 혼자 날짜계산을 잘못해 약속이 내일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기다리다 못한 사람이 왜 나오지 않느냐고 노염탄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적도 있었다. 묘하게도 그때마다 그날 아침에 수첩을 보며 확인까지 해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몇년 사이에 한두번 생기는 일이어야 옳다. 어떻게 이처럼 어이없는 일을 한 주일에 두번이나 겪는지. 며칠 새에 연속 나 자신에게 당하고 보니 나를 어떻게 믿고 사나, 싶은 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화요일에 혼자 나가 앉아 있었던 건 그래도 지난 게 아니라 전이라서 다음날 태연히 시간에 맞춰 나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지만 일요일 결혼식건은 다들 아침 일찍 전주에서들 왔는데 서울에 있는 사람이 못 가본 셈이 되었다. 그것도 꼭 참석해야 할 처지여서 얼마나 난처했는지. 내 개인의 일이니 이만했겠지만 다른 것과 연관된 일이었으면 어쨌을까, 싶으니 더더욱 기분이 좋지 않다. 대체 이런 착오를 왜 반복하게 되는 걸까.신경숙/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