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는 4명 정도 된다. ‘정도’라고 표현한 것은,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자주 메이저리그 엔트리에 포함되어 4명을 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끝난 정규 시즌을 기준으로 그 4명의 코리안 메이저 리거에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선발 투수 박찬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마무리 투수 김병현,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선발투수 김선우 그리고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가 된 시카고 커브스의 최희섭이 포함되어 있다. 이중 박찬호가 9승에 머물면서 6년 연속 10승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데 실패하며 최악의 한해를 보낸 것과는 달리, 나머지 세 선수들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한해를 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병현은 8승3패36세이브를 기록해 본인의 최고 기록을 세웠고, 중간에 부상을 당해 트레이드를 당하는 수모를 겪은 김선우는 이적 이후 승리를 거두면서 내년에 선발투수로 기용될 확률을 높였고, 최희섭은 시즌 막바지에 메이저리그에 합류해 1할8푼의 타율과 홈런 2개로 내년도 주전자리를 넘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무려 4명의 한국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메이저리그의 무대를 밟는 것은 여전히 야구선수들에게는 꿈과 같은 일이다. 특히 박찬호의 등장 이전까지는, 한국인이라면 마이너리그에서 뛴 경험만 있어도 최고의 대접을 받았을 정도다. 그 좋은 지난 82년, 프로야구 원년의 신화를 남긴 박철순이다. 밀워키 브루어즈의 마이너리그팀에서 1년 반가량 선수생활을 했던 그는 초특급대우를 받으며 OB베어스에 스카우트되어, 그해 22승7세이브 무패의 대기록을 세우며 몸값을 톡톡히 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도 상황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어린이들로 구성된 리틀리그에서 시작해 대학리그와 3단계의 마이너리그까지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선수가 된다는 것은 확률적으론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개봉된 영화 <루키>는 그렇게 어려운 메이저리거의 꿈을 끝내 이루어낸 고등학교 화학교사, 짐 모리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 속에 담겨져 있는 그의 놀라운 이야기만큼이나, 영화 <루키>가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 또한 드라마틱했다는 사실이다. 그 시작은 제이슨 스타크라는 ESPN.com의 기자에게서 시작한다. 1999년 여름, 그는 마이너리그팀 중 하나로 영화 <열한번째 남자>(Bull Durham)를 통해 잘 알려진 더램 불즈에서 뛰고 있는 투수 짐 모리스를 찾아갔다. 텍사스 서부의 한 고등학교에서 화학교사 겸 야구 코치로 일하다가,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35살의 나이에 프로야구로 돌아온 그의 이야기를 기사로 쓰기 위해서였다. 12년 전 마이너리그에서 뛴 것을 제외하면 전혀 경력이 없는 35살의 선수가, 무려 157km의 강속구를 뿌린다는 소식에 흥미를 느꼈던 것이다.
ESPN 잡지의 8월호에 실린 그의 이야기는 그뒤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경쟁지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에서 그를 표지모델로 삼아 특집을 다루기도 했을 정도. SI의 바로 그 기사를 본 수많은 이들 중에는 훗날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되는 마크 치아르디가 끼어 있었다.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본 기사를 읽게 된 그는 ‘만약 이 친구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엄청난 이야깃거리가 되겠는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 기사의 주인공인 짐 모리스의 사진을 보는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짐 모리스는 그가 80년대 후반 밀워크 브루어즈의 마이너리그에서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동료였던 것. 그날 밤 그는 바로 짐 모리스의 대리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고 싶다는 의사를 우선 밝히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디즈니 역시 짐 모리스의 이야기를 영화화하자는 마크의 제안에 대해, ‘짐 모리스의 동의만 얻어온다면 긍정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진짜 기적은 바로 다음날 일어났다. 갑작스럽게 짐 모리스가 메이저리그로 승격된 것. 그는 현재 박찬호가 홈 구장으로 뛰고 있는 앨링턴 볼 파크 구장에서 약 4만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메이저리거로 첫 등판을 하는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첫 타자를 스트라이크 아웃 시키며 감격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그날 저녁 짐 모리스의 대리인이 영화 제작과 관련 250여통의 전화를 받은 것은, 그런 의미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짐 모리스는 최종적으로 마크 치아르디를 영화의 제작자로 선택했다. 그는 “10년이 넘게 전혀 연락이 없던 옛 동료가 영화제작자로 나타나 메이저리거가 된 내 이야기를 영화화하자고 했으니, 더이상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라며, 결정이 필연적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렇게 묘한 인연에서 시작된 영화는, 제작과정에서 최대한 짐 모리스를 참여시키면서 과장없는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심지어 짐 모리스의 첫 등판장면을 찍기 위해서 실제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 경기 중간에 데니스 퀘이드 등 배우들과 제작들이 경기장에 들어가 촬영을 하는, 미국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도 해냈을 정도다. 그렇게 사실적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관객의 반응을 보기 위해 혼자 몰래 극장을 찾았던 짐 모리스를 울게 만든 것은 당연한 일. 비록 통증 재발로 그가 메이저리그를 떠나면서 신화는 거기서 멈추었지만, 그는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디즈니가 매혹될 만큼 아름다운 ‘꿈★’을, 그가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이철민 /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루키> 공식 홈페이지 : http://disney.go.com/disneypictures/rookie
영화 <루키>의 뒷이야기들 : http://www.awesomestories.com/movies/the_rookie/the_rookie_ch1.htm
ESPN 짐 모리스와의 인터뷰 : http://espn.go.com/page2/s/questions/jimmorri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