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에 Y로터리 앞을 지나다 택시기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와 나는 그의 사투리 덕분에 막 동향이라는 걸 확인하고 난 참이었다.
“이 로타리 생긴 기 한 삼십년은 됐을 거를. 그라이까네 박통(朴統) 때 건설한 기지. 그때 이 로타리 설계 멋지기 했다고 박통한테서 표창까지 받았다카던데 지금 그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욕을 많이 먹을 기라요. 특히 우리겉이 기름밥 먹는 사람들, 이 로타리만 지나갈라마 아무리 나 겉은 양반집 자손도 욕이 저절로 튀나온다카이, 참 내. 차선은 전부 다 1차선인데 이거를 요래 홱 비틀고 조래 싹 비틀고 하이 안 막힐 수가 있는가. 및년만 지나도 차가 얼마나 늘어날 기다, 한 십년 뒤에는 얼마다… 이 청개구리 올챙이 사촌놈의 자슥이 꿈에도 생각 모하고 말이라. 하여간 내가 이 자슥이 어데 사는지 알기만 하마 기양 집구석에 폭탄이라도 콱 던지고 싶어, 진짜로.”
나는 그의 과격성에 약간 놀라 “아, 욕 먹으면 오래 산다는데 너무 욕하지 마세요”라고 대꾸했다. 내 말이 먹혔는지 그뒤로 설계 때문에 집안에 폭탄이 날아들어 죽었다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정말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사는 것일까. 이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몰라도 욕을 많이 먹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오래 사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높은 곳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그만큼 그림자도 길어서 그런 것이지 싶다. 오십줄에 죽은 세조 임금이나 히틀러는 예외로 보이지만 그들은 생전에 욕을 하는 사람들을 그때그때 너무 많이 죽이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욕을 덜 얻어먹은 게 아닐까.
연전에 개통된 I교차로의 고가도로는 5년 이상의 건설기소요되면서 주변 지역을 상습 정체구대명사로 만들었다. 완공 뒤에 보니 고가도로가 시작되는 곳 교각 한쪽에 고가도로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맞은편에는 시공자와 설계자의 이름이 적힌 명판이 들어갈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움푹한 자리만 마련되어 있을 뿐, 한해가 다 가도록 명판이 붙여질 기미가 없었다. 알고보니 그 고가도로를 개통하기 전에 무슨 연구기관에서 시뮬레이션인지 뭔지로 측정해본 결과 그 고가도로가 없는 편이 일대의 교통 소통에 훨씬 낫다는, 있기 때문에 차량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고 차량 속도가 훨씬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므로 비어 있는 명판에 결단코 이름을 채워넣지 않을 모양인데, 당사자들을 오래 살게 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그들의 이름이 들어간 명판을 붙여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설계자, 시공자, 감리자, 입안자, 구청장, 국회의원, 시장, 대통령, 장관, 공무원 기타 등등 손톱만큼이라도 관련된 사람들 전부. 글씨가 좀 작아도 괜찮다. 워낙 정체가 자주 일어나니 멀거니 앉아 있기보다는 그 이름들을 읽고 외워가며 기다리는 편이 훨씬 덜 지루할 것이다. 그래도 이름이 너무 많아서 들어갈 자리가 없으면 명예의 전당을 따로 세워서라도 그들의 빛나는 이름을 알리고 또 알려야 한다. 그들의 장수를 위하여. 나아가 우리 서로가 서로의 장수를 축원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음식이며 물이며 공기는 나날이 나빠지고 암이며 에이즈며 여타의 치명적인 질병이 창궐하고 있는 이 마당에 한국 사람의 평균 수명이 해마다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이 문제를 욕과 관련지어 연구해 볼 것을 환경부와 보건복지부, 행정자치부, 그리고 내가 이름을 모국가지원 연구기관에 강력히 권고한다. 연구보고서 뒤에 연구하고 보고하는 사람의 이름을 집어넣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성석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