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사람이 있다. 너무나 순진하게 세상을 정의롭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 술 들어가면 인생의 대의명분을 너무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뻔히 알면서도 더욱 큰 시스템을 바라보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들만의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 일이 아닐까 싶다.
미국에서 바라보는 캐나다는 멍청 더하기 순진무구의 이미지가 많다. 영화 <캐나다 침공작전>이 그렇고, <폭소기마특공대>가 그렇다. <캐나다 침공작전>에서 캐나다 사람들의 순진성은 미국인들의 무식성과 폭력성의 대조법이라고 치는데, <폭소기마특공대>에서는 주인공이 멍청할 뿐만이 아니라 주인공의 애인 및 악당까지 똑같이 순진 플러스 멍청하게 나온다. 이런 편견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일부는 적어도 사실인 것 같다. <오우삼의 미션특급>처럼 가끔 가다 만날 수 있는 캐나다 시리즈와 일반적으로 만날 수 있는 미국 시리즈를 비교해보면, 확실히 캐나다쪽이 좀더 단순하고, 미국 드라마에서 잘 나타나는 ‘패권주의 우리나라만 만세’가 없다(‘적다’가 아니라 ‘없다’이다).
미국 캐나다 합작품인 <뮤턴트X>는… 그러니까… 솔직하다. 싼티가 난다라고 말하기 전에 이 점을 말해야 한다. <뮤턴트X>는 쌈마이 드라마임을 숨기지 않는 대신(이들이 타고다니는 비행선을 보면 알 수 있다), 무언가 더 있는 척, 깊은 척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TV드라마가 지닌 한계에 체념하는 것이 아니다. 결점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드러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드라마 외적의 솔직함 때문에 놀라게 된다.
어떤 조직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했고, 그 결과 평범한 시민 내에 변종인간들이 속속 탄생한다. ‘게놈 X’라는 표면상 공학회사의 에크하르트는 이 변종인간들을 모아서 자신만의 조직을 만들어 세상을 지배하려 하고, 처음에 참가했던 아담은 이를 거부하고 변종인간들을 규합해 제시, 브레넌, 샬리마, 엠마와 함께 ‘뮤턴트X’를 결성, 에크하르트의 음모를 분쇄하려 한다. 플롯상으로 완전히 <엑스맨>이다. 제작진은 <엑스맨>을 열심히 봤다고 대놓고 말한다. 어정쩡하게 흉내만 냈다면 왜 짝퉁을 만들어! 하고 화라도 낼 텐데, 눈을 반짝거리며 ‘나 <엑스맨> 너무 좋아해!’라고 하니 할말이 증발되어버린다.
<뮤턴트X>는 기실 아이디어만 <엑스맨>이고 진행하는 방식은 만화 <파워퍼프걸>에 가깝다. <뮤턴트X>의 시각은 아주 단순하다. 무찌를 악당이 있고 물리칠 사명은 우리에게 있다! 변종인간들을 이용, 장악해서 악행을 저지르려는 ‘생김새는 앤디 워홀’ 에크하르트가 가장 압권이다. <뮤턴트X>의 각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이 요약가능하다. 변종인간도 인간이라서 자유의지가 있고, 무조건 변종인간을 붙잡아다가 나쁜 짓 시키려는 에크하르트는 결국 제 도끼에 발등찍힌다. 더도 덜도 아니고 만화다. 이 드라마의 만화적인 속성은 에크하르트가 실패한 부하는 무조건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에서 극대화된다. 쟤는 도대체 뭘 믿고 부하들을 내다버린단 말인가 도대체 에크하르트의 부하는 몇명인가 혹은 에크하르트의 부하들은 <스타워즈>의 제국군인가너무나 단순한 내용, 단순한 인물로 밀고 나가는 <뮤턴트X>가 드라마를 채우는 것은 눈요기이다. <뮤턴트X>는 ‘가죽옷 버전 ’이다. 가죽옷을 휘날리며 지구를 구하는 요원들은 폼생폼사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이들의 액션장면은 오로지 이렇게 코트를 휘날리며 몸을 날리면 멋있더라, 밖에 없다. 얼굴 뽀송뽀송한 주인공들이 걸치고 나오는 의상행진 및 헤어스타일은 지금 채널이 드라마 채널인지 패션 채널인지 의심케 할 정도이다. 눈요기를 위해 잔머리 굴릴 생각도 못한다. 깊이있는 내용도 없고, 오리지널리티는 애초에 포기했고, 멋있게 보이겠다고 애쓰며 얄팍한 수를 쓰지도 않는 <뮤턴트X>. 얄팍한 수가 없다는 것 때문에 이 드라마의 아우라가 순박해진다. 기실 인물들까지 그렇다. 마지막 장면은 보통 희망을 찾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좋은 점은 꼭 골라서 생각하며 함빡 웃는 것이 뮤턴트X 요원들의 모습이다. 이들이 얼마나 깊은 생각이 없느냐면, 하다못해 동료가 죽었다 깨어났는데 놀라지도 않고 살아났다고 무조건 좋아할 정도이다. 뮤턴트X 요원들을 보면 세상을 저렇게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이 순진성 앞에 깊이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아무래도 이것은 국민성이 만들어낸 경향이 아닐까 싶다. 비교급으로 봐서 순진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 만들어낸 이들만의 세상은 비웃을 수가 없다. 그냥 잠시 순진무구하게 악당을 무찌를 수 있는 세상을 즐기는 것이 최선이다. <뮤턴트X>를 보는 동안에는, 우리도 잠시 그 순진한 시민 대열에 합류하여 기뻐하면 된다.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