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봉곳한 가슴은 성적 상상력을 부추기는 대표적인 신체부위다. 자랑하듯 돌출된 모양새는 시각과 촉각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하지만 얄궂게도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은 욕망은 상상 속, 딱 거기까지만이란 경고음을 동반한다. 여성성의 보고이면서 은밀하게 감춰야 할 금기의 대상이란 모순은 마르고 닳도록 호기심을 견인하는 이유일 것이다.
바늘과 실처럼 여성의 가슴과 콤비관계인 브래지어도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다. 억압의 상징이란 앞면과 여성의 정체성을 아름답게 뽐내는 욕망의 분출구란 뒷면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브래지어 CF는 이 가운데 후자에 더 주목하고 있다. 브라운관이란 광장에 뛰쳐나와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다음의 두 광고는 그곳, 즉 가슴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브래지어 광고는 여성의 생활필수품을 논하는 대중성 높은 CF다. 그러나 주류 광고계의 울타리에 들어가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오랫동안 무명모델이나 외국인이 브래지어를 착용한 채 상투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비주얼의 인쇄 광고로 만족해야 했다. 제품의 태생적인 특성 때문인지 브래지어 광고 하면 조건반사처럼 섹스어필이란 말부터 떠올리며 선정성, 천박함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연결했다.
변화의 기운이 나타난 것은 2000년 11월 란제리 업체인 비너스가 김규리란 인기스타를 모델로 기용하면서다. 이후 경쟁사인 비비안도 박지윤을 모델로 내세우며 더이상 속옷 광고가 유명 연예인의 기피 분야가 아님을 증명했다. 이제 미녀스타가 브래지어를 광고하는 것은 파격적인 사건에서 자연스러운 일로 달라졌다.
제작연도 2002년 광고주 신영와코루 제품명 비너스 무빙브라 대행사 리앤디디비 제작사 유레카(감독 김규환)그럼에도 한동안 빅모델을 앞세운 브래지어 CF는 머뭇거렸다. 스타시스템을 활용할 경우 모델의 인지도를 브랜드로 연계하는 작업은 필수. 하지만 잦은 모델 교체와 절제된 섹스어필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소비자의 뇌리에 그리 진한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성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경시될지 모른다는 모델의 불안감과 맞물려 소극적인 접근방식으로 만족하는 인상이 역력했다.
현재 방송을 타고 있는 비너스 무빙브라(이하 무빙) CF와 비비안의 볼륨포에버 로맨틱(이하 볼륨) CF는 브래지어 광고가 주저하는 과도기를 어느 정도 극복했음을 드러낸다.
두 광고는 공히 광고계에서 최고액 몸값을 자랑하는 고소영과 김남주란 빅모델을 제품의 분신으로 내밀었다. 그런데 이들을 요리한 방식은 상반된다. 고소영의 무빙 CF는 제품의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다소 이성적인 소구전략을 택했으며, 김남주의 볼륨 CF는 사랑을 주제로 전형적인 감성 광고의 모양새를 띠고 있다.
먼저 무빙 CF는 나른한 오후의 한 사무실을 배경으로 삼았다. 직장여성 고소영이 졸음을 날릴 겸 팔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켠다. 깍지 낀 손을 좌우로 흔드는 고소영을 쫓아 사무실의 무명씨 여성도 몸을 움직인다. 그런데 스트레칭 뒤 두 여성의 행동이 현격히 다르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경쾌하게 일을 재개하는 고소영과 달리 무명씨 여성은 눈치를 살피며 옷 매무새를 단장하느라 바쁘다. 가슴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여 자유로운 활동을 돕는다는 무빙 브라의 장점을 비교방식으로 명쾌하게 알리고 있는 내용이다.
제작연도 2002년 광고주 비비안 제품명 볼륨포에버 로맨틱 대행사 대홍기획다음은 볼륨 CF. 고성 앞 호숫가에 예쁜 드레스로 단장한 김남주가 나타난다. 그는 촛불을 물 위에 조심스럽게 띄우며 ‘내 가슴에 사랑을 켰다’라고 주문을 왼다. 잠시 뒤 요술처럼 호수가 1천여개의 촛불로 가득 채워지고, 김남주의 앞에 근사한 연미복 차림의 신사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로맨틱 듀엣춤을 추며 황홀경에 젖는다.
동화 같은 분위기로 소녀적인 감성을 건드리며 ‘아름다운 볼륨을 영원히’란 카피를 곁들인 이 CF는 ‘볼륨 포에버 로맨틱’이란 제품명에 충실한 스토리로 좀 길다 싶은 브랜드를 쉽게 각인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놀라운 크리에이티브를 담고 있진 않지만 영상, 모델, 스토리 등 모두가 무난하게 매혹적이다. 춤을 매개로 김남주의 아름다운 가슴 선을 아슬아슬하게 드러내며 모델을 향해 동경의 감정을 적극 이입할 수 있게끔 유도한 측면도 돋보인다. 섹스어필하면서도 거부감없이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표현의 적정선을 잘 찾은 것 같다.
무빙 광고와 볼륨 광고를 통틀면 편안함과 섹시함이란 브래지어를 향한 동시대 여성이 바라는 가치를 집약적으로 엿볼 수 있다. 굳이 두 광고 가운데 어느 쪽 얘기에 솔깃한가를 묻는다면 무빙 CF쪽에 한표를 던지고 싶다. 볼륨 광고는 도발적인 정면승부를 피한 채 판타지의 요소에 기대 안정적으로 에두른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반면 무빙 광고는 현실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발상으로 담백하게 여성의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비록 남성의 시선엔 긴 소매 상의를 껴입은 고소영의 모습이 인색하게 보이겠지만 브래지어 광고 하면 화끈한 무엇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무심할 만큼 가뿐히 무너뜨린 게 고소한 뒷맛을 남긴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