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예비군 Y는 어제도 광화문에 있는 서울문화센터에서 비디오 두편을 빌려왔다. 이 센터는 한·일문화교류를 목적으로 일본에서 설립한 것으로 Y는 봄부터 이곳을 이용해왔다. 히라가나라고는 の밖에 모르면서 Y는 스즈키 세이준과 이마무라 쇼헤이, 나루세 미키오, 기노시타 게이슈케를 빌렸다. 자막이 전혀 없는 그 비디오들을 제대로 감상했을 리 만무하다. 비디오가 쎄엑∼ 되감길 때에야 눈을 비벼 뜨는 Y가 아내의 안쓰러운 시선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차마 말할 수 없다. Y가 일본 비디오를 보기 시작한 것은 올해 2월에 열렸던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을 보고서부터다. 스즈키 영화를 보며 아시아영화와 전쟁의 관계를 탐구하겠다는 심오한(?) 뜻을 품은 것이다. 급기야 Y는 두달 전부터 일본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 Y는 비디오를 보며 오로지 ‘인사말’에만 반색을 하더니 최근엔 비디오 케이스를 복사해서 몇줄의 시놉시스를 더듬거리며 추리해냈다. 읽고 들을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Y는 어떻게든 스즈키 세이준과 나루세 미키오의 시나리오를 구해 보려 했지만 서울문화센터는 구로사와 아키라 정도를 제외하고는 시나리오를 갖춰 놓지 않은 상태이다. Y는 일본의 어떤 감독과 이만희 감독 그리고 김기영 감독을 비교해 보고 싶다는 기특한 말을 하면서 한국 감독의 비디오를 구해보는 게 훨씬 더 힘들다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EBS와 케이블TV에서 방송하는 한국영화라도 꼬박꼬박 잘 챙겨두는 게 최선이라는 그에게 아무런 위로도 해줄 수가 없었다. 왠지 Y의 아내에게 이런 인사말을 전하고 싶다. 오겡끼데스까?이지윤/ 비디오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