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Kill 2001년, 감독 크리스토퍼 매누알 출연 앤 헤이시, 샘 셰퍼드, 에릭 스톨츠 장르 스릴러 (파라마운트)
굳이 군대만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명예란 가장 소중한 가치의 하나다. 자신의 명예를 짓밟힌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포기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그러나 명예는 결코 단순한 직위나 공훈 혹은 타인을 짓밟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종종 그 사실을 잊는다. 결속력이 강하고, 폐쇄적이며, 명예에 집착하는 군대는 무결점의 완전체이기를 원하고 또 행동한다. 군대 내의 잘못을 은폐하고, 희생양에게 모든 것을 덮어씌우기도 한다. 군대는 언제나 정의롭고, 명예로워야 한다는 강박증에 걸려 있다. 군대 내에서 벌어진 각종 의문사 사건을 보아도 그렇고, <장군의 딸>이나 <하이 크라임>을 보아도 그런 생각이 든다.
<원 킬> 역시 군대에 의해 희생된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오말리 대위(앤 헤이시)는 오로지 군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헌신한다. 군인임이 자랑스럽고 즐겁다. 육체적으로도 결코 남성들에 뒤지지 않는다. 어느 날 전쟁영웅인 넬슨 소령(샘 셰퍼드)이 오말리 대위의 상관으로 부임한다. 여성은 전쟁의 최전선에 서지 못한다는 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넬슨과 오말리 대위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다. 몇 개월 뒤 오말리 대위의 집에 넬슨 소령이 칼을 들고 침입하다가 총에 맞아 숨진다. 지방검사는 정당방어를 인정하지만, 군에서는 계획적인 살인죄로 기소한다. 부대의 지휘관이자 넬슨의 친구인 도란이 소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오말리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 것이다.
실화에 기초한 <원 킬>의 상황은 전형적이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음모에 휘말린 무고한 희생자. 오말리 대위는 자신이 헌신했던 군대에 의해서 생매장당할 위기에 처한다. <원 킬>은 오말리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전력할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둘 진실이 밝혀질수록 다른 길로 접어든다. 넬슨 소령과 오말리 대위는 연인이었다. 넬슨은 ‘군인’인 여성을 처음 보았고, 오말리는 전쟁영웅 넬슨에게 반했다. 넬슨은 오말리의 아이들과도 친해지고 평범한 연인들처럼 행복해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일까? 도란의 주장처럼 유부남과의 연애가 진급에 장해가 되기 때문에 계획적인 살인을 한 것일까? 진실은 군대 내의 연애나 불륜, 진급 같은 지엽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다. 좀더 근원적인, 군대라는 조직 자체의 모순에서 시작한다. 전쟁영웅인 넬슨은 자신의 정체성과 과거의 수많은 ‘살인’ 때문에 괴로워하고, 오말리는 그런 넬슨과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는 군대의 본성을 보며 회의하게 된다. <원 킬>은 하나의 살인이 제기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예리하게 파헤친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