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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의 오!컬트 <데블스 에드버킷>
2002-10-09

네 인생을 바쳐라,행복을 빌려주마

나이를 어느 정도 채우다보니 어느덧 집을 사야 한다는 강박이 현실로 와닿기 시작한다. 즈음해서, 텔레비전에서는 아파트 광고가 부쩍 늘었다. 원래 많았었는데 내가 무심해서 몰랐던 것이었나? “이 아파트를 장만하세요. 그럼 당신 남편이 일찍 들어옵니다. 그리고 가정은 행복해집니다”가 요즘의 아파트 광고의 주된 설정인 것 같다. 하다못해 “노주현은 죽었다”라는 카피로 시작하는 아파트 광고도 등장했다. 섬뜩했다. 그리고 좀 의아해졌다. 고단한 인생살이에 지쳐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노주현이 그 아파트를 사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인지, 그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 죽었다는 것인지 좀 헷갈린다. 화면에는 일과 술과 기타 등등의 삶의 현장에 지치고 찌들려 초죽음이 된 노주현을 보여주는 컷과 그 아파트에서 화목하고 행복한 노주현을 보여주는 두 가지 컷이 교차되는데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그 아파트를 장만하느라 지쳐 쓰러져가는 노주현으로 보이더란 말이다. 그러니 어찌 섬뜩한 광고가 아닐 수 있으랴. “노주현은 죽었다. 이 아파트를 사느라고…”라는 카피로 시작하는 광고라니.

욕망을 탓할 수는 없다. 그것은 행복을 얻으려는 갈망의 또 다른 이름이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좋은 집. 품격있는 옷. 권위있는 명함과 신분을 대변해주는 고급 자동차. 그리고 ‘몸뚱이를 안락하게 해주는 물질들과 욕구를 채워주는 환경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의 조건들이다. 마음을 비우고 타인을 긍휼히 여기고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고 항상 근면성실하고 금욕하라는 가르침은 그런 것들을 독차지하려는 자들의 개수작일지도 모른다. 보아하니 이 세상은 분명코 악마가 경영하는 세계임에 틀림없다. 가장 온유하고 깊은 깨달음으로 가야 할 종교조차도 언제나 미움과 반목이 합리화되는 살육의 동기가 되어왔고 끊이지 않는 전쟁의 원흉이고보면 악마를 섬기는 것이 틀림없다. 이 세상은 물욕의 에너지로 꿈틀대는 악마의 세계이다. 당신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좀더 잔인해질 것이며, 물질과 쾌락만을 삶의 본질로 여길 것이며 그 무한생존경쟁에서 결코 나약해지지 않고 기어코 살아남아 스스로가 악마의 피조물임을 실천해 보이겠노라고 악마에게 맹세하고 영혼을 담보로 계약을 해야 한다.

그러면 당신의 인생은 승승장구. 호화빌라도 당신 것. 예쁜 여자도 여럿. 나약한 것들은 기꺼이 당신 종이 되어서 굽실거릴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성현들은 따끔하게 꾸짖지만 뭐가 문제인가? 이 세상은 원래 악마의 것이거늘. 문제가 있는 쪽은 악마의 세계에 살면서 악마와 적절한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쪽에 있는 것이다.

영혼을 팔기를 거부하고, 물욕을 채우기를 거부하고 마음을 비운다는 핑계로 게으른 일상을 누리고 육신의 쾌락을 억제해서 생각이 많아져서 이것저것 자꾸 가치관을 새로 따지는 것. 문제는 그들이다. 그들은 물질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경쟁력이 턱없이 부족해서 먹거리를 확보하지 못해서 언제나 배고프고 물질은 물론 물리적 작용에도 나약해서 때리면 맞고 밟으면 터진다. 물질의 세계에서 영혼과 마음을 이야기하고 욕정의 세계에서 사랑과 자비를 갈구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고 과대망상인 것이다.

그런 불행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릴 적부터 치밀한 교육을 받는다. 노력해라. 1등이 최고다. 금메달을 따라. 정상에 올라라. 최고가 되어라. 그리하여 대마왕에게 간택받을 수 있도록, 그분께서 너를 하수인 1등급으로 임명한다면 네 인생은 천하무적 출세길이 열릴 것이다. 당신은 가장 빨리 달리는 당나귀가 된 것이다. 낚싯대에 매어진 눈앞의 홍당무를 먹기 위해서 악마의 수레를 끌고 달리는 당나귀. 당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것들은 잠시 빌려 쓰는 것. 그 대가로 당신 인생은 진짜로 지불되고 있다는 것만은 알면 좋겠다. 환불, 반품 절대불가.김형태/ 화가·황신혜밴드 http://hshban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