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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2002-10-09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딱딱한 정치경제학 용어들을 접고 말하자면, 자본주의란 자본가가 노동자에게서 100원어치 노동력을 70원에 사서 30원을 공으로 먹는 착취체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개미처럼 일해도 베짱이 같은 자본가보다 한없이 가난해진다(이를테면 1980년 무렵 미국 경영진은 사무직 노동자보다 40배 많은 봉급을 받았는데 현재는 120배 많이 받는다). 게다가 자본주의에서는 연탄집게나 화장실 똥 막대기처럼 하찮은 것부터 사랑이나 구원처럼 고귀한 것까지, 인간의 삶과 관련한 모든 것이 상품의 형태로 교환되기에 두 계급의 삶의 질은 하늘과 땅처럼 벌어져만 간다. 자본가나 노동자나 다를 게 없는 사람인데 한쪽은 착취하고 다른 한쪽은 착취당하니 두 계급의 갈등은 당연하다.

아무런 대책없이 착취에만 전념했던 초기 자본주의는 언제나 심각한 갈등상태에 있곤 했다. 자본은 그 갈등을 공적 폭력(군대와 경찰)과 사적 폭력(청부 폭력배)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이 갈등의 뿌리를 제거할 순 없었다. 노동자들의 연대는 갈수록 강해지고 세상은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칼 마르크스가 그 붉은 물결에 과학을 부여하자 물결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자 아예 빨갱이들에게 넘어가는 나라가 생겨나자, 자본은 폭력 이외의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본주의에 얼마간의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가미하여 혁명의 가능성을 흡수하는 수법이었다. 프랑스니 독일이니, 제도정치에 좌파정당이 존재하고 국가가 노동자들에게 교육, 의료 같은 최소한의 삶의 문제를 지원하는 이른바 서유럽 복지국가들은 그 최선의 결과라 불린다.

자본이 마련한 좀더 최근의 대책은 더욱 세련되고 문화적인 것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뭐든 가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만듦으로써 자본주의에 호감을 갖게 만드는 수법이다. 그런 수법에 사용되는 광대들이 자본과 노동자 계급이라는 양대 계급 사이에 기생하는 지식인이니 문화 예술인이니 하는 ‘자유로운 정신들’이다. 그들은 대개 많이 배운 사람들이고, 자신의 의지 외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멋스러운 사람들이며, 먹고사는 일 따위에 집착하는 속물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그런 삶이 그들의 격조있는 정신과 관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삶은 그들의 격조있는 정신이 아니라 그런 삶에 필요한 돈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은 그들의 충실한 광대짓의 대가로 자본이 주는 부스러기다.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삶이란 단지 선택하기 나름이라, 먹고사는 문제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그런 속물 근성만 버리면 삶은 얼마든 자유로운 것이라, 제 ‘라이프 스타일’로 선전하는 광대짓의 대가로 말이다.

광대짓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끊임없이 다른 성교 대상을 찾는 프리섹스주의는 ‘감정의 자율성을 존중한 결과’라 선전된다. 물론 그건 개소리다. 생각해보라. 못생기고 돈도 없어 장가도 못 가는 노총각 노동자가 백날 프리섹스주의를 표방한들 프리섹스주의가 되겠는가. 광대짓은 짐짓 자본주의에 대한 경멸에 으르기까지 한다. 물론 그 경멸의 목적은 제 격조있는 정신을 유세하려는 것일 뿐, 그들에겐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신념이 있다.

그 신념이야말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법한 그들이 이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호기롭게 살 수 있는 재능이다.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신념은 세상은 절대로 변해서 안 된다는 자본의 욕망과 행복하게 교미한다. 자본가들은 흔쾌히 그들의 격조있는 정신 앞에 정중함을 표시하고 그들은 제 광대짓을 알아차릴 만한 자의식을 완전히 잃는다. 그들은 완벽한 광대가 된다. “삶이란 결국 선택하기 나름 아닌가? 진보니 혁명이니 대학 시절에나 하는 것 아닌가? 인생이 그렇게 단순한 것인가? 세상이 과연 변할까?”

그들은 이제 그들의 말과 그들의 글과 그들의 책과 그들의 작품과 그들의 모든 문화적 영향력을 통해 광대짓을 지속한다. 그들은 자본가의 천박함과 혁명가의 촌스러움마저 비웃으며 참으로 자유롭게 살아간다. 그 광대들, 정말 자유롭지 않은가?김규항/ 출판사 야간비행 대표 gyuhang@nightfl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