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타고 오가며 ‘그 학교’, 무슨 고등학교라는 이름은 따로 있지만 이렇게 부르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것 같아 ‘그 학교’로 한다, 앞을 지나노라면 자꾸 생각나는 게 있다. 이 이야기는 교육과 관련되어 있다. 교육, 하면 나는 빡빡머리에 교련복을 입고 각반을 찬 채 소풍 아닌 봄행군을 할 때 찍은 사진을 떠올린다. 내 경험에 그 시절 교육의 요체이자 방법론은 ‘붕어빵 찍어내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붕어가 아닌 나는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법어(法語)를 듣기까지 한사코 붕어인 척하면서, 붕어 아니면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그럭저럭 살아냈다. 그렇다면 요즘 교육의 요체인 동시에 방법론에 해당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실 요체와 핵심이 일치하는 경우는 찾기가 쉽지 않은데 의외로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마주치는 ‘그 학교’에서 쉽게 찾아냈다.
‘그 학교’는 내가 사는 신도시의 변두리에 있다. 신도시의 변두리는 ‘구도시’의 일부로서 학교 주변은 누군가 남몰래 갖다버린 쓰레기로 지저분하고 숲과 논밭의 흔적이 약간은 남아 있다. ‘그 학교’는 작년까지만 해도 지원으로 들어가는 학교였는데 올해부터는 내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 그랬듯 ‘뺑뺑이’로 학생이 배정되는 학교가 되었다. 내가 사는 신도시의 중학교 3학년들도 추첨을 하게 되어 얼마간의 인원이 그 학교에 배정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아는 ‘한 중학교’에서, 물론 이 중학교도 이름은 따로 있지만 굳이 이름을 쓸 이유가 없으니 이렇게 부르기로 하자, 특수목적고나 외국어고를 가는 아이들을 빼고(이 부분만 가지고 따로 할 이야기가 한 보따리는 있다) 전교 1위에서 5위까지의 성적을 내던 아이들이 모두 ‘그 학교’에 가게 되었다. ‘한 중학교’만 그런 게 아니라 신도시 중학교 대부분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소위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의 학부모들은 ‘그 학교’를 인간의 배설물을 담아두는 통에 비유하며 무슨 협잡이나 불순한 의도가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했으나 증거는 없었다. 이들 학부형은 모처에서 만나 대책을 논의했는데 이 모임에서 내려진 결론이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의 요체요, 방법론인 ‘밖으로! 밖으로! 밖으로, 밖으로!’였다. 그리하여 ‘그 학교’가 개학하기 전 ‘한 중학교’에서 1위부터 5위까지의 성적을 낸 아이 가운데 네 명, 곧 1, 2, 4, 5등이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갔다. 어디로? 들은즉 미국이 많고 중국과 영국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3등인 아이는?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부모가 능력이 없어 그냥 ‘그 학교’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열흘도 못 되어 아이가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미 가슴이 타버린 아이의 어머니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형들이 공부한다고 괴롭혀요. 자기들은 대학을 못 가는데 우리만 공부 잘해서 대학에 가면 자기들은 학교 졸업하고도 쪽팔린다고요.’
그날 저녁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의 아버지를 족쳐서 시집간 이종 육촌 누이인가가 영어권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산다는 자백을 받아냈고 당장 죽는 한이 있어도 그 곳에 아이를 보내고 말리라고 다짐했다. 마침 내가 아는 사람의 친구 동생인가가 캐나다에 있었다. 친구를 만난 김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치가 떨린다면서 대뜸 동생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그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불쌍한 아이를 보낼 터이니 하숙비만 받고 자기 아이와 함께 공부를 시켜주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동생이 자신의 아이를 포함 벌써 한국에서 간 아이들을 셋인가를 데리고 있노라고 했다.
아이가 ‘그 학교’를 나와서 남아공으로 갔는지, 캐나다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오가며 ‘그 학교’ 앞을 지나노라면 서글퍼 나도 몰래 발이 머문다.성석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