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어즈 NEXT>감독 와타나베 다카시/DVD 애니
코믹 판타지의 신기원을 열었던 <슬레이어즈>의 2번째 TV시리즈. 칸자카 하지메, 아라이즈미 루이 원작의 <슬레이어즈>의 주인공은 리나 인버스. 리나 인버스는 정의감에 불타는 전형적인 영웅이 아니라, 오로지 돈에 눈이 멀어 악당과 드래곤을 퇴치해주는 일종의 용병이다. 게다가 리나는 판타지의 조역으로 흔히 등장하던 여성이고, 마법사다. 혼자 세계를 짊어진 듯 심각한 영웅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돈과 먹을 것)에 충실하면서도 그 때 그 때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눈을 가진 악동들. <슬레이어즈 NEXT>는 리나와 단짝 기사 가우리가 아멜리에 공주와 제르가디스를 다시 만나 마법서 클레어 바이블을 찾는 모험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전히 엉망진창 소동을 벌이고, 리나의 필살기인 '드래곤 슬레이브'는 남발된다. 인기 캐릭터인 제로스의 등장은 눈여겨볼 점. 한없이 가볍고 즐거운 듯 하면서도, 가끔씩 드러내는 진지하고도 심오한 듯한 느낌을 놓치지 않는 것이 <슬레이어즈> 시리즈의 장점이다.
한글, 일어, 영어 음성이 모두 지원되는데, 일본 성우 중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처음 <슬레이어즈> 시리즈를 접하는 사람을 위해서 원작자, 캐릭터, 마법의 종류 등을 간략하게 소개한 것은 높이 사줄 점이다. 1편 디스크에는 백마법, 2편에는 흑마법, 3편에는 불마법이 정리되어 있고 나머지는 4,5,6편과 합계 제공되는 책자에서 소개된다.
<레인>나카무라 류타로 감독/매니아 엔터테인먼트
가상 현실의 세계를 음울하게 그려낸 SF 애니메이션. <레인>은 난해하다. 게다가 느리고 적막하다. 의도적으로 시청자를 불쾌하게 하려는 듯 귀에 거슬리는 노이즈가 돌출하고, 각각의 사건들은 분명한 의미를 남겨주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마구 흘러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미궁 속을 헤매는 느낌이 든다. 레인은 투신자살한 친구 치사에게서 메일을 받는다. 나는 다른 형태로 살아 있고, 내가 있는 곳에는 신이 있어. 그것을 알리기 위해 메일을 보냈어. 묘한 내용이다. 레인은 친구들과 함께 사이베리아라는 클럽에 놀러갔다가 총격 사건에 휘말린다. 한 남자가 인질을 위협하고 있을 때 레인이 다가간다. 그러자 그 남자는 이상한 말을 던진다. '와이어드는 리얼 월드에 개입하면 안돼' 그러자 레인의 말투가 바뀌면서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어'라고 답한다. 그 남자는 자살하고 만다.
한편 나이츠라는 해커그룹이 판토마라는 게임과 유치원의 술래잡기 놀이 게임을 합성하여 리얼 월드의 살인 유도를 하는 것이 알려진다. 레인은 나이츠와 접촉을 시도하고, '신'이라고 자칭하는 남자를 만난다. 신이 말하기를 "인간의 진화는 멈추었고 더 이상 진화할 수도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열등한 생물로 진화한 것인가. 그저 욕망을 위해 육체를 유지하는 비참한 신세. 그 탈출구는…" 바로 와이어드다. <레인>은 기묘한 애니메이션이다. 각 에피소드마다 분명한 이야기가 들어있지 않다. 아주 희미하게 이야기의 단락이 구분되고, 사건들이 전개된다. 그 사건이라는 것도 애매모호하다.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그 모호함이 <레인>에 이끌리게 한다. 레인은 과연 누구일까? 와이어드와 리얼 월드의 관계는 도대체 무엇이지? 신이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레인>을 만든 곳은 프로덕션 세컨드. 아직 신진급에 속하는 제작집단이다. 이들은 후원사 파이오니아에 게임화와 관련상품 판권을 넘겨주는 계약으로 <레인>을 제작할 수 있었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탓에 인물의 동작이나 배경 같은 것에 때로 허술한 구석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들이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 즉 와이어드나 모니터의 표현, 전기줄이 뒤엉킨 하늘 등을 묘사하는 부분은 탁월하다. 프로덕션 세컨드는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에 역점을 두어 <레인>을 만들었고, 그것이 매니아들을 사로잡았다. 서구에도 많은 매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컬트 성향의 애니메이션이다.
<은하철도 999 극장판><안녕! 은하철도 999>감독 린 타로/DVD애니
<은하철도 999>는 총 113화에 이르는 TV판을 극장판으로 함축시켜 놓은 작품이고, <안녕! 은하철도 999>는 '은하철도 999'의 세계에 종지부를 찍는 진정한 완결판이다. <은하철도 999>는 철이가 메텔을 만나 은하철도 999에 동승하며 기나긴 여행에 나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계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만나면서 여행을 거듭하던 철이는 시간성에서 기계백작과 만나게 되고, 기계의 몸으로 영원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단순한 인간과 기계의 대립을 넘어서 모험을 통해 성장하는 소년의 모험과 하록 선장이 나오는 <나의 청춘 아르카디아> 등에서 반복되는 청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이 잘 표현된 서정적인 작품이다. 린 타로 감독의 연출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나온 작품.
<안녕! 은하철도 999>는 기계제국에 맞서 싸우며 어른이 된 철이가 메텔의 메시지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다시 은하철도 999에 탑승한 철이는 그동안 TV시리즈에서 생긴 의문점들을 해결해준다. 철이의 아버지는 과연 누구인지, 기계제국의 프로메슘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등등을 밝히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마침내 철이는 메텔의 품에서 벗어나 진정한 성인이 되는 것이다. 마쓰모토 레이지 원작의 <은하철도 999>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성인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 의미를 이 완결판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한글과 일어 더빙, 한글과 영문 자막이 지원된다. 마쓰모토 레이지와 린타로 감독의 메시지를 볼 수 있는 프로덕션 노트와 예고편도 들어 있다.
<보노보노>난바 히코시 감독/DVD애니
해달, 너구리, 다람쥐 등이 어울려 사는 <보노보노>의 세계는 허탈하다. 거창한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고, 격렬한 감정도 없다. 평화로운 숲 속에서 실없는 장난을 치고, 별로 심하지 않은 폭력을 가하는 정도. '나 때릴 거야?'라는 말을 남발하는 포로리를 보며 한숨짓다 보면 어느 새 그 허무한 풍경이 정겨워진다. 아 그리고, 가슴을 울리는 대사들도 가끔 나온다. 아이들과 함께 보면서 <보노보노>의 에피소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면 교육적인 효과도 있다. 케이블 채널 투니버스에서 방영할 때 꽤 인기가 높았고, 그 덕에 일본보다도 먼저 DVD로 발매했다. 일어더빙과 한글더빙, 일어자막과 한글자막이 모두 실려 있다. 셔플의 오프닝과 엔딩 역시 한글과 일어 더빙판이 모두 들어 있다.
<빨강머리 앤>다카하다 이사오 감독.매니아 엔터테인먼트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플란더스의 개> <엄마찾아 삼만리> 등으로 유명한 니폰애니메이션이 만든 세계명작극장 시리즈의 대표적인 작품. 상상력이 넘치는 활달한 고아 소녀 앤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푸근하고 사실적인 터치로 생생하게 그려낸 말 그대로의 '세계명작'이다. 연출은 다카하타 이사오, 화면구성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맡는 등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적 인물들이 곳곳에 참여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캐릭터와 배경, 연출 등 모두 치밀하고 섬세하게 다듬어져 있다. 다카하다 이사오의 담백하면서도 서정이 넘치는 연출이 특히 돋보인다. 과거의 추억이 필요할 때 첫손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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