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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억짜리 프로젝트 <성냥팔이‥> 투자사 튜브 대표 김승범
2002-09-18

˝블록버스터에 계속 도전한다˝

“아니 근데, 꼭 인터뷰를 해야 하는 건가.” 총제작비 110억원, 순제작비 92억원, 제작기간 2년여 등의 기록을 자랑하는 한국영화 사상 초유의 프로젝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하 <성소>)의 개봉을 이틀 앞둔 9월11일, 튜브엔터테인먼트의 김승범 대표는 손사래를 쳤다. 기껏 인터뷰 약속을 잡아놓고도 멈칫거릴 정도니 개봉을 앞둔 부담감이 대단했던 모양. 사실, 튜브엔터테인먼트와 <성소>의 인연은 악연에 가깝다. 이 영화에 돌입한 이후 튜브는 끊임없이 자금압박에 시달렸고, 김승범 대표는 2001년 한해를 돈줄을 찾는 정처없는 여행길에서 보내야 했다. 경영권을 다른 업체에 넘길 뻔한 위기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이런 튜브의 ‘방황’은 물론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내츄럴 시티> 등 대작이 한꺼번에 제작에 들어간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성소>에 대한 온갖 안 좋은 소문으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때문이었다. 결국 다시 투자와 배급이라는 치열한 전장으로 들어가는 튜브로서, <성소>의 개봉은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마무리짓는 수순이기도 하다.

드디어 <성소>가 개봉한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2년 동안 너무 시달렸는데, 일단 그런 힘든 일이 끝난다는 점에서 홀가분한 마음이다. 이젠 결과에 대해서도 담담해졌다. 어떻게 보면 흥행과 관련해 또 다른 위기를 맞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얘기해 큰 짐은 던 셈이다. 사실 영화를 하다보면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을 통해서 무엇을 배우냐인 것 같다. 튜브는 <성소>를 통해 누구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쌓았고 내부적 자신감도 생겼다. 경영권 압박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지켜냈다는 점에서는 자부심도 느낀다. 다만 투자자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느낌이다.

워낙 제작비가 많이 든 탓에 웬만큼 흥행해서는 본전 찾기가 어려울 것 같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엇갈린다. 일반 관객이나 극장에서는 모호하고 난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걱정이다. 비디오 판권이나 해외 세일즈를 생각할 때, 국내에서 250만명이 들면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전망이었다. 때문에 애초에는 국내에서 본전 가까운 흥행을 기록하고, 해외 세일즈를 통해 수익을 낼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미진한 듯해 국내에서 조금 밑지고 해외 세일즈를 적극적으로 펼쳐 손실을 벌충해야 할 상황인 듯하다.

손실이 난다면 그 폭이 엄청날 것 같다.

시사회가 있던 9월9일 코리아픽처스의 김동주 대표를 만나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 생각이 정리됐다. 어느 정도 손실이 나더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쪽으로 말이다. 대신 해외쪽으로는 기대를 많이 걸고 있다. 미국 메이저 배급사에서도 지속적으로 연락이 오고 있다. 이 영화를 미리 본 토니 레인즈나 피에르 리시엥 같은 유럽 평론가들도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리시엥은 이 영화에 관해 “동양의 <매트릭스>”라고 칭찬하며, 유럽쪽 배급과 홍보를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할 정도다. 해외 세일즈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걱정하는 만큼 손해보지는 않을 것 같다.

베니스에도 제출했던 것으로 아는데, 영화제 진출문제는 어떻게 되나.

베니스에 제출된 버전은 컴퓨터그래픽이나 사운드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편집본이었다. 리시엥 같은 사람은 어떤 영화제에도 내밀지 말고 내년 칸영화제로 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해외 세일즈를 고민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현재 고민하고 있다. 일단 내년 아메리칸필름마켓(AFM)을 시작으로, 필름마켓에는 내놓을 생각이다. 사실 게임 인터페이스 등에 워낙 많은 문자가 들어가는 탓에, 해외용 버전을 만드는 것은 꽤 시간이 걸릴 듯하다. 토니 레인즈가 번역에 대한 감수를 해주기로 했다.

장선우 감독이 원망스럽거나 하진 않나.

장 감독과의 관계는 좋다. 비즈니스 차원으로 보자면, 시행착오로 인한 손실도 있었지만, 내가 그에게서 제일 좋아하는 점은 감독다운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열정적으로 자기 생각을 마음껏 던져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 좋다. 최소한 그는 돈을 엉뚱한 데 갖다 쓰거나, 게으르고 나태하진 않았으니까. 적어도 나는 장 감독과는 인간적인 교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장 감독이 다음 작품을 우리와 하겠다면, 내 입장에선 또 하고 싶다.

<성소>로 얻은 게 있다면.

단연 큰 경험을 치렀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위기관리 능력도 생겼다. 최소한 튜브의 멤버와 <성소>의 제작진은 많은 것을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나 자신도 이 커다란 시행착오 속에서 거꾸로 자신감을 얻었다. <성소>를 통해 최고의 위기와 최악의 상태에까지 몰렸던지라, 앞으로는 어떤 영화라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반대로 잃은 게 있다면.

당연히 돈이다. (웃음) 그리고 구조조정을 한다고 직원들도 여럿 잃었고, 악소문에도 많이 시달렸다

그래도 남는 아쉬움이 있을 듯싶다.

예산 관리, 프리 프로덕션, 프로덕션 디자인이 정밀했다면 20억∼30억원 정도는 아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결과적으로 <성소>를 통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시행착오가 현재는 극복되고 있다는 말인가.

<성소>의 경우, 애초 제작비는 63억이었는데 92억원까지 늘어났다. 그리고 6개월 동안 촬영하고, 5개월 동안 후반작업을 한다고 예정돼 있었으나, 이는 10개월 촬영, 8개월 후반작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성소>와 에 참여했던 스탭들이 제작관리에 참여하고 있는 <데우스마키나>는 당초 예산이 50억에서 54억원으로 늘었을 뿐이고, 제작기간도 수해 등과 관련해 20일 정도 늘어난 것뿐이다.

충무로에선 <성소>가 흥행에 실패하면, 가뜩이나 구조조정 국면을 맞아 돈가뭄을 겪고 있는 한국영화계의 자금난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돈다.

어느 정도 타당한 전망이다. 요즘 투자 분위기는 굉장히 위축됐다. 좋게 말하자면 정리가 이뤄지는 중이다. 이런 움직임은 긍정적일 수도 있다. 그동안 투자자나 공급자나 아무렇게나 투자하고 아무렇게나 만들었다. 이젠 장기적 전망을 가진 투자자들만 남았다. 차라리 좋은 일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튜브는 블록버스터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인상이다.

블록버스터는 리스크가 크다. 하지만 그만큼 가능성도 많은 것 아닌가. 우리는 블록버스터에 계속 도전할 것이다. 다만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식을 사용할 것이다. PPL이나 공동마케팅 같은 다양한 투자자들이 다양한 목적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 계획이다.

배급을 재개하는 것은 <집으로…>의 성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들었다.

그렇다. <집으로…>로 상당한 수익을 올렸고, 여력을 갖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배급업에 뛰어들게 됐다.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된다.

애초 배급을 포기할 때, 자금난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나. 자금엔 여유가 생겼나.

사실 지금도 피곤한 이유가 <성소>도 있지만, 또 다른 빅딜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게 더 초조한 문제다. 모 경제지에 보도된 것처럼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일정 정도의 투자를 논의 중이며, 다른 대기업과도 뭔가 커다란 투자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앞으로 튜브엔터테인먼트의 방향은 어떤 것인가.

배급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다. 회사의 모양새를 안정감 있게 가자는 것이다. 투자에서는 작은 영화든 큰 영화든, 우리는 일정 지분만 가져갈 계획이다. 우리 지분은 10∼20%만 취할 방침이다. 남들처럼 좋은 영화의 지분은 많이 갖고, 흥행이 어려워 보이는 영화는 분산 투자를 유치하는 그런 방식을 취하진 않겠다는 것이다. 주된 수입원은 배급 수수료, 제작관리 수수료, 해외 세일즈에서 생기는 수익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영화 한방으로 큰돈을 벌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겠지만, 안정감은 생길 것이다.

새로 배급시장에 뛰어들면서 각오도 남다르지 않겠나.

그동안의 부침을 통해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배웠다면, 배급을 위해 영화를 만들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물량과 크기 위주로 라인업을 구성했는데, 이제는 강약조절을 할 생각이다. 배급을 위해 제작기일을 당기거나 하지도 않겠다. 영화를 충분히 완성도 있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고, 배급은 그 다음 문제다.

배급과 관련된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일단 얼마 전 <기쿠지로의 여름>을 개봉했다. 사실 이 영화도 CJ에 배급을 부탁했는데, 그쪽 여력이 없어 우리가 직접 하게 됐다. 본격적인 배급은 내년 초부터 시작될 것이다. 내년 라인업은 4월쯤 튜브픽처스가 제작하는 <귀여워>를 시작으로, 6월쯤 뮈토스필름과 튜브픽처스가 공동제작하는 <데우스마키나>, 7월쯤 리처드 도너 감독의 외화 <타임라인> 등이 잡혀 있다. 그리고 튜브픽처스의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와 <동정없는 세상>, 청년필름의 <첫눈>, 영화방의 <광개토대왕>, J-Team의 <아치와 씨팍>, 드림맥스의 <한여름 밤의 꿈>, 수다의 <바르게 살자> 등의 영화를 배급할 계획이다.

그동안 A라인, 쇼박스 등이 참여했고, 롯데도 배급업 진출을 선언했다. 배급시장이 만만치 않은데,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가.

분명 배급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롯데가 극장을 넓히면서 배급에 뛰어들었고, 시네마서비스도 극장사업에 진출했다. 하지만 극장의 경쟁이 심화되는 것은 배급 입장에선 좋다. 사실 배급에선 누가 하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영화의 콘텐츠가 얼마나 좋은가가 중요하다. 80%가 콘텐츠라고 본다. 만일 지난해 말 우리가 배급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올 상반기는 튜브가 단연 업계 1위였을 것이다. <집으로…>가 410만명, <2009 로스트 메모리즈>가 220만명, <나쁜 남자> 80만명, <위 워 솔저스>가 70만명 등 총 770만명을 기록하지 않았나. 현재 진행중인 큰 투자자들과의 협의만 잘된다면 다른 배급사와 경쟁해볼 만하다.

글 문석 ssoony@hani.co.kr / 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