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이번 7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와호장룡>으로 인한 중국의 물결이었다. <와호장룡>이 4개 부문을
거머쥐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주윤발과 양자경이 당당히 세계적인 스타들과 함께 시상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와호장룡>이 수상을 할
때마다 수상자들에게 기쁨의 포옹을 해주는 장쯔이의 모습도 분위기를 한껏 북돋웠다. 거기에 시상 보조요원으로 전형적인 중국계 미인이 등장해
브라운관에 시종일관 잡히기도 했고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까지 등장했으니,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감독상이
예상을 뒤엎고 <트래픽>의 스티븐 소더버그에게 돌아가자 리안 감독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버렸다는 것인데, 은근히 수상을 기대했던 그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올해의 아카데미가 이렇게 ‘중국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일찌감치 감지되어 왔다. 그것은 비단 다른 영화상이나 영화제에서 <와호장룡>의
수상이나 평론가들의 극찬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주 일상적인 수준에서 <와호장룡>이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하나의 화두가 되었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예로 필자가 살고 있는 미국의 소도시 더램에서도 <와호장룡>이 개봉된다는 소식이 지역 TV뉴스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또한 주변의 미국인들이 한동안 <와호장룡>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기도 했었다.
당연히 그런 열풍은 인터넷에도 불어닥쳤다. 이미 20여개의 홈페이지가 만들어져 네티즌들의 방문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고, 야후! 등에 여러
개의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만들어져 <와호장룡>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들이 교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시아계영화 중에 이 정도로 자생적인
온라인 커뮤니티가 많이 구축된 영화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그런 온라인 커뮤니티가 보여주는 <와호장룡>에 대한 애정의
강도가 상당히 세다는 사실이다. 한 팬이 운영하는 비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이번 아카데미 결과에 대해 작품상의 경우 독창성이 전혀 없는 <글래디에이터>가
아니라 <와호장룡> 혹은 <트래픽>에 수여되었어야 한다며, 일종의 격문을 띄워놓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무엇보다 <와호장룡>의 네티즌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속편에 대한 소문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기때문이다. 그런 소문은 지난해 7월 한 인터뷰에서 리안 감독이 최초로 속편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칸영화제에서의 성공으로
한껏 고무되어 있던 리안 감독은 영화의 원작소설이 원래 5부작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4번째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제작자의 설득으로 속편 혹은 전편을 찍는 것에 대해 논의하는 중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사실 그 인터뷰 이전까지 리안 감독은 ‘다신 무술이
들어가는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공언해오던 중이어서, 팬들의 기대감은 한껏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12월 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리안 감독이 원작소설 중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이야기를 영화화하기로 합의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와호장룡> 속편의 등장은 팬들 사이에서 기정사실이 된다. 특히 아직 시나리오 작업이 시작조차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상의 시놉시스까지
공개되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양자경, 주윤발, 장쯔이 등 주연배우들의 출연여부에 대한 억측이 난무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1월26일 대만의 <차이나 타임즈>와의 인터뷰 중 속편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 리안 감독이 자신의 에너지가
이미 다 소모돼버려서 속편을 찍는 것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는 답변을 한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아 홍콩과 중국의 신문들이 일제히 <와호장룡> 속편의 가능성에 대한 기사를실었고, 2월16일에는 속편의 영문제목이 이 될 것이며 2002년에 촬영을 시작할
것이라는 상세한 내용을 담은 기사까지 나오게 된다. 정작 본인은 부인하고 있는 상태에서 언론과 팬들이 속편의 제작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말았던 것이다. 가장 최근인 지난 2월21일에는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와호장룡>의 작가진들 대신 속편을 위해 새롭게
투입된 작가가 제출한 시놉시스에 대해 리안 감독이 퇴짜를 놨다는 소문이 인터넷상에 퍼지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와호장룡>을
주제로 한 놀이기구를 유니버설 스튜디오 테마파크에 만들 것이라는 소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런 소문이 진실로 변환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까지 리안 감독이 공식적으로 언급한 ‘지금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속편(혹은 전편)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좀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감독으로서 그의 생명력을 연장시켜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작 중국이나 한국 같은 아시아권 국가에서
<와호장룡>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훗날 그가 <와호장룡>의 속편 혹은 다른 형태의 ‘중국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아시아의 관객들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랄 뿐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 <와호장룡> 공식 홈페이지 http://www.crouchingtiger.com/
▶ <와호장룡> 팬사이트 http://www.geocities.com/monkeypeaches/CTHD.html
▶ <와호장룡> 한글 사이트 http://www.tigerndrag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