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의 극장상영이 또다시 좌초됨에 따라 이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불붙고 있다. 영화계 및 문화단체들은 8월27일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재심 결정에서도 <죽어도 좋아>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부여하자 이해할 수 없다며, 회의록 공개를 요구하는 등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회의에 참여했던 임정희, 박상우, 조영각 등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들 또한 “등급위원들의 의사결정 근거들이 정당한가”라는 문제제기와 함께 사퇴의 뜻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씨네21>은 15인으로 구성된 등급위 위원의 <죽어도 좋아> 등급분류에 대한 각각의
견해를 위원 이름 가나다 순으로 싣는다. 인터뷰는 전화통화로 이뤄졌으며, 일부 위원의 경우 등급위가 발표한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권장희(38·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총무)
(각 위원들의) 성향을 분석하려는 것 같아서, 발언하고 싶지 않다. 회의과정에서 나왔던 제한상영 등급이 적절하다는 의견과 18세 등급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정리해서 보도자료를 냈으니 그걸 참고해 달라.
김방옥(50·동국대 연극학과 교수)
토론을 통해 상호의견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과정이나 표결이 공정하게 이뤄진 만큼 등급위의 결정에 대해서는 존중한다. 개인적으로 18세 등급결정을 냈던 것은 신체의 특정 부위 노출에 관한 우려보다는 개별적인 작품의 맥락을 짚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사회 가치관이 많이 변해 있는 만큼 등급위도 그 흐름을 수용할 필요가 있으며, 세부 규정이 있긴 하지만 해석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봤다.
김수용(73·영화감독, 대한민국예술회 회원)
나 자신 스스로 전향적인 시각으로 영화를 보고, 또 만들어왔다. 그러나 한국영화 83년사에 신체의 특정부위가 노출되고 구강성교를 거쳐 성행위로 직결되고 그것이 남녀의 실제상황인 경우는 없었다. 영화는 배우가 시나리오라는 허구를 감독의 연출로 연기해서 관객에게 감동과 실감을 주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카메라가 장치되어 있고 그 앞에서 출연자들이 감독의 아무런 연출지시도 없이 임의로 연기하고 있다. 과연 극영화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가 검토할 문제다. 일반 극장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기 위해선 더 큰 진통을 거쳐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김숙현(36·서울 서원초등학교 교사)
논란이 일어 재심까지 했지만, 표결 결과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경향을 반영해주고 있다. (위원들 모두) 전문가는 아니지만 상식에 근거해서 의견을 냈다고 본다. 굳이 <죽어도 좋아>를 두고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예외 또한 많지만 성이라는 것을 상품화해서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견을 갖고 있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일견 합법적인 부부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가 가겠지만, 다른 나라에서 전례가 없는 표현까지 등급위에서 허용해줄 순 없다. 70대의 삶을 굳이 그렇게 초점화하고 부각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은밀한 것을 굳이 대중화할 필요가 있을까. 제한상영관이 빨리 생겼으면 한다.
노계원(63·삼성언론재단 연구위원)
등급을 매기는 기준은 비슷하지만 일정한 공간에서 다중이 보는 영화의 특성을 고려해서 비디오쪽이 더 관대한 편이다. 그런데 비디오에서도 성기나 체모 노출은 일체 안 된다. 제작하는 사람들도 감히 엄두를 못 낸다. 그들도 촬영 때 잠금장치 등을 이용해서 철저히 통제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성기가 나오고 거기에 펠라치오가 나온다. 완전히 포르노다. 등급위의 심의는 그 영화의 예술성이나 작품성을 고려하는 게 아니라 연령에 적합한 수준을 파악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분류하기에는 어불성설이고 그래서 제한상영등급 의견을 냈다. 묵살당해온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은 좋은데 현 등급분류상 불가능한 장면을 가지고 18세 등급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을 무시한 행동이다. 간접적으로 우회적으로 순화시켜서 충분히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잖은가. 노인들의 성도 중요하지만, 손자뻘의 젊은이들이 보기에 노인들이 모두 색(色)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는 위험도 있다.
박상우(37·게임평론가)
상영을 제한할 만한 어떠한 음란성이나 반사회성도 없다. 이후 다른 작품을 심의함에 있어서 기준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획일적인 잣대를 가져다대는 것은 등급위원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다. 자기 편하려고 영화를 죽일 순 없지 않나.
오정진(32·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
소위원회에서 성기노출 장면과 구강성교 대목이 일반인의 정서를 과도하게 해하기 때문에 제한상영등급 결정을 내렸다고 들었다. 내부 규정이 그렇다는 이유 외에는 논리적으로 왜 안 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고 본다. 법률에 있는 조항도 아니고 내부 규정이라면 사회적인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의 사회적 파장에 대해서도 걱정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제한상영 등급을 주는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순 없다. 그건 기존 논리에 집착하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그렸고, 또 어떤 느낌을 주는지 작품마다 다르며 등급위는 그때마다 판단을 내놓아야 한다고 본다. 문제시된 장면은 카메라 앵글을 봐도 다큐 형식이지 포르노가 아니다. 노부부의 여러 가지 생활의 단면들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봤다. 그 장면을 빼도 충분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일부러 감추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유수열(63·여의도클럽 회장)
영상물은 소설이나 음악에 비해 대단히 구체적이다. 덜 은유적이어서 상상이나 해석의 여지가 없다. 가리워졌다거나 다른 앵글로 잡아서 간접적으로 묘사했다면 모르지만, 이번 경우는 그림으로 영상으로 그대로 남아있는 것 아닌가. 성 또한 향유되어야 할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만, 다 드러내 보이면 예술성이나 미학성은 사라진다. 피카소가 왜 필요한가. 사진 찍어놓고 예술이라고 하면 되지. 개인적인 입장이라면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겠지만, 난 국민의 보편적인 정서를 중요시하는 영등위원이다. 또 그러한 업무를 국가로부터 위탁받았다.
임정희(45·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지도위원)
등급위가 일방적인 결정권을 가져선 곤란하다. 등급위원들도 여론을 충분하게 살필 의무가 있다. 여러 차례 시사회와 토론회 자리에 참석해서 의견을 청취했고 그것에 전제해서 소위원회의 제한상영등급 판정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표결에 앞선 토론에서 음란물은 아니라면서도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내부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모순되는 발언이다. 규정은 시대나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고, 변해야 한다. 누구나 음란물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면, 그 지점에서 규정을 놓고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새로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등급위 무용론에 동의하지 않지만, <죽어도 좋아>를 시발로 등급위의 위상과 기능에 관해 좀더 심도깊은 고민이 이뤄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
장옥님(44·KBS 심의실 차장)
영화마다 심의기준이 달라지다보면 큰 혼란이 예상된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가릴 수 없는 것이다. (규정상의 조항이)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고, 존중했다. 규정을 무시할 정도로 이 영화가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물론 메시지를 볼 때 의미있다. 인터뷰를 보면 박 감독이 18세 등급을 받기 위해서 굳이 작품을 수정하지 않겠다고 강경하게 말했는데, 부분적인 편집이나 모자이크 등의 방법을 통해 타협점을 찾을 생각은 없는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