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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받은 <죽어도 좋아>,영상물등급위원회 15인의 견해 (2)
2002-09-07

˝일반 상영을 허하라? 불허하라!˝

장은숙(41·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상담실장)

<거짓말> 등급분류할 때 18세 등급을 줘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냈었다. 직접적인 성행위에 따른 노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그때는 감독이 문제가 된다면 처리를 하겠다고 해서 찬성을 했었던 것이다. <죽어도 좋아>의 경우, 정말 리얼한 연기라고도 볼 수도 있지만, 오럴섹스 장면만은 직접적인 섹스행위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적나라했다. 그렇다고 18세 등급을 줄 경우 앞으로 등급분류시 기준 적용이 어렵다거나 특정장면이 음란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음란하다고 여기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고, 또 노인층의 반발이 예상돼서 제한상영 등급 의견을 냈다. 젊은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되고 노인들이 하면 괜찮다는 식의 논리가 오히려 노인들을 인간적으로 무시한다고 봤다.

정상용(57·변호사)

한마디로 말하자면 심의지침에 따른 것이다. 세칙에 성기노출은 안 된다, 체모노출은 안 된다는 게 있다. 이 영화는 저촉이 된다. 위원들의 생각이 다 바뀐다면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세칙 개정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또 성기노출을 허용한다면 걷잡을 수 없다. 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른데 작품성을 이유로 드는 것은 기준치고 너무 추상적이다.

조명현(59·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본부 사무국장)

(등급 분류 기준은) 윤리성 아니냐. 영화제 심사하는 게 아니다. 어떤 영화가 문학성을 가지고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포르노 사이트라든가 음란물 사이트에 올라가면 음란물이 되어버린다. 상업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것이다. 제일 염려되는 부분은 성기노출이라든가 오럴섹스 같은 장면이다. 갑자기 바지가 벗겨졌다거나 시위하면서 노출하는 장면이라면 몰라도 이런 영화가 나가면 안 된다. 추후에 저건 되는데 왜 이건 안 되냐라는 항의를 받을 수도 있다. 덧붙여 등급위를 제재하는 기구로 보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는데, 등급위가 있기 때문에 현행법의 테두리가 많이 완화되고 있다. 등급위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검찰이 일방적인 잣대로 제어를 하는 경우가 지금보다 더 많아질 수 있다. 꼭 성기노출이 되어야만 감독의 의도가 살아난다고 보지 않는다. 그 장면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건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방증하는 것 아닌가. 세상이 변하긴 변해서 그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지만, 공개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정홍택(63·한국영상자료원 이사장)

진지하게, 1초도 빠짐없이 다 봤다. 회의 자리에서 나왔던 논의들을 충분히 듣고서 표결에 참여했다. 표결시의 의견이나 근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조영각(32·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18세 등급가를 줘도 하등의 문제가 없다. 미국의 심의방법을 적용한다면 부모의 지도가 있을 경우 15세 아니 12세 이상이 봐도 된다고 본다. 정리 이영진 anti@hani.co.kr

<죽어도 좋아> 사태에 사퇴 의사 표명한 조영각 위원 인터뷰현재 시스템에서 개선 불가능하다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조영각씨는 한동안 영상물등급위원으로 불렸다. 그에게는 편치 않은 호칭이었을 것이다. 검열 철폐, 등급보류 폐지 등 그동안 외곽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외쳤던 이가 난데없이 등급위 위원으로 불려가다니. 장난이라고 하더라도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 “안에 들어가서 등급위를 바꿔보자”는 심산이 서 있지 않았다면 받아들이지도,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지난 8월28일 박상우, 임정희 두 위원과 함께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위원직 사퇴 의사를 표했다. 불과 두달여 만에 그가 ‘장외투쟁’을 선언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사퇴하게 된 까닭은.→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이상 없어 보였다. 등급보류 조치에 의한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볼 권리가 더이상 제한되어선 곤란하다는 바깥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고자 등급위에 들어갔는데 현재 시스템 아래서는 도저히 개선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현재 시스템은 뭘 뜻하는가. → 등급위는 합의제 민간기구를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회의 과정에서는 토론이나 논쟁이 불가능하다. 갑론을박이 오가면서 접점이 모아져야 하는데, 그저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나서 표결에 들어가는 식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합리적인 표결을 거쳤는데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해서 사퇴하는 것은 다른 위원들에 대한 폭력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이건 경선 불복이 아니다. 또 다른 등급위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다른 위원장을 재선출하는 것도 아니다. 사퇴는 권리를 포기하고 나온 것이다.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석상이 싫어 토론을 조금 해보려고 하면 그만 됐다면서 표결로 가자고 하는데 그게 오히려 소수의견에 대한 다수의 횡포 아닌가.

그런 상황이 어디서 비롯됐다고 보나.→ 사회적인 여론을 수렴할 생각을 안 한다. 무책임하게 갖고 있던 의견을 되풀이할 뿐이다. <거짓말>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부딪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회적인 악영향에 대한 우려도 없었다. 등급위에서도 영화가 전체 국민정서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좀더 큰 시각에서 보면 등급위 위원 구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해 등급위의 등급보류는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왔다. 현 위원회가 꾸려진 것은 그 이후다. 그런데도 위헌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는 위원들이 많다. 등급보류가 옳다고 주장했던 이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제한상영관이 없다고 모든 영화에 18세 등급가 이하를 줄 순 없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는데. 등급위의 보도자료에도 제한상영관 문제는 소관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건 등급보류 옹호론과 같은 맥락이다. 개인적으로 제한상영 등급은 최소한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것이 등급보류 조치를 대신하는 것으로 여겨져선 곤란하다. 창작자가 겪었던 고통을 줄이고, 영화관객의 볼 권리를 넓히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다.

등급위원으로서 활동하는 동안 느낀 점이 있다면. → 등급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동안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싶었다. 일례로 등급위에 무대공연 소위가 있다. 여기서 하는 일 중 하나가 관광업소에서 일하는 러시아 아가씨들의 공연 관리다. 여권문제부터 공연허가까지 맡고 있다. 이건 정부의 책임이 크다. 노동부에서 해야 할 일을 문화부로 떠넘겼고 그게 다시 등급위로 넘어온 거다. 이게 말이나 되나. 영화인들을 다들 업자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오아시스> 등급분류 때 혼자 15세를 줬더니 누가 나한테 그러더라. 18세 이상가로 왜 등급신청을 했겠냐, 다 마케팅 전략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주는 게 좋지 않느냐라고. 이런 상황에서 김수용 위원장이 창작자로서 또 영화계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로서 그런 오해들을 불식시켜줘야 하는데, 아쉽다. 등급위원들이 제시한 근거에 대한 불만도 있다고 했는데.→ 작품성은 평가하지 않는다면서도 같은 입으로 영화에 대한 평가를 직간접적으로 한다. 위선적인 것 아닌가. 특히 영화를 만들었던 분들은 자기 주관으로 영화를 평가한다.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뭐라고 보나.→ 법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소위원회를 포함해서 공륜과 공진협 때부터 심의 관련 업무를 했던 사람들이 더이상 참여하면 안 된다. 이미 검열기구라고 판정이 나지 않았나. 등급위 출범은 이러한 결정에 힘입은 민간합의제 기구다. 사무국이 따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업무의 연계성, 효율성 등을 이유로 그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상 ‘향유’보다 ‘규제’ 위주의 심의가 계속될 것이다. 내부 규정만 해도 그렇다. 일부 위원들이 그것은 바꿀 수 없는 것 아니냐고 그러는데, 바꿔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못 바꾸는 것일 뿐이다. 이영진 ant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