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예 차라리 전쟁터 한복판에 비둘기도 날리고 그러지….’ 가끔 들르는 모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에서 본 영화 <윈드토커>에 대한 한 네티즌의 한숨 섞인 평가다. 그 사이트에서는 한 네티즌이 <윈드토커>를 ‘사이판 버전의 <영웅본색>’이라고 비꼬자, 다른 네티즌들이 ‘<영웅본색>을 욕되게 하지 말라’며 항의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페이스 오프>에 이어 <미션 임파서블2>를 통해 할리우드 적응을 완벽히 끝냈다는 평가를 받아온 오우삼 감독의 신작은, 그렇게 네티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한편에는 ‘그래도 오우삼’이라고 애써 좋은 면들을 찾아내려는 시도를 하는 팬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아쉬움이 많은 영화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몇 가지 면에서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마련인데, <윈드토커>도 예외는 아니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는 아주 생소했던 나바호 인디언 병사들의 존재를 일깨워준 점은 가장 부각되는 면. 물론 나바호 인디언들이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인터넷에서 나바호 인디언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찾아보고, 2차대전 당시 그들의 활약상이 어떠했으며 또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분명 영화가 줄 수 있는 색다른 즐거움이 분명하다.
그런 과정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나바호 인디언들만이 전쟁에 무전병으로 참전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바호 인디언 출신 참전병들이 이른바 전장에서 암호로 무선교신을 하는 무전병을 일컫는 ‘코드 토커’(Code Talker)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보다 한발 앞서 미군의 무전병으로 활약한 인디언 병사들이 있었던 것. 그 주인공들은 1차대전 중 유럽전선에 참전한 미군의 촉타우 인디언 병사들이었다. 여러 인디언 부족 중 하나인 촉타우 인디언 병사들이 1차대전에 참전한 것은, 독일군의 미국 선박공격에 대항하여 미국 정부가 미군을 프랑스에 배치한 1918년 10월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촉타우 인디언들이 무전병으로 참전한 것은 아니었다.
♣ 1차대전에 참전해 무전병으로 활약한 촉타우 인디언 병사들.♣ 촉타우 인디언 무전병들을 기리는 기념비.♣ 2차대전에 참전해 활약한 나바호 인디언 병사들.
그저 평범한 육군병사로 배치되었던 촉타우 인디언 병사들이 암호로 교신하는 무전병으로 활약하게 된 데는,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있다. 참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군은 독일군이 마지막 발악을 하면서 지키고 있던 ‘힌덴부르크 선’이라는 전선에서 독일군에 둘러싸여 어려운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특히 모든 미군의 통신망이 감청되고 있었던 데다가 암호체계 마저 독일군에 해독되어, 미군은 너무나 불리한 상황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군의 로렌스 대위는 우연히 자신의 부하 중 두명의 인디언 병사들이 자신들의 고유언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게 된다. 그리곤 당시 전장에 몇명의 촉타우 인디언 병사들이 있는지를 물었고, 이내 총 8명이 주변 부대에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곤 바로 사령부에 있는 촉타우 인디언 병사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촉타우 인디언 병사들간의 촉타우 언어로 된 통신을 시험해 보았다.
물론 당연히 그 실험은 성공이었고, 그뒤부터 8명의 촉타우 인디언 병사들은 각 부대의 통신병으로 배치되게 된다. 그들의 등장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는데, 48시간 만에 독일군을 일거에 혼란상태에 빠뜨리고 전세를 완전히 뒤엎는 결과를 가져왔을 정도다. 그리고 72시간 만에 독일군은 ‘힌덴부르크 선’을 포기하고 퇴각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이른바 ‘모이제-아르곤 대공세’라고 불리는 연합군의 대대적 승리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만큼 당시의 전쟁에서 무선교신의 암호체계가 중요했던 것. 하지만 그뒤로 촉타우 인디언 병사들이 무전병으로 쓰인 예는 없었다. 얼마 되지 않아 1차대전이 마무리되었기 때문. 안타까운 것은 당시 그들과 함께 전쟁을 치렀던 많은 미군들이 그들의 전과를 상부에 보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훈장이 수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훗날 미국 정부는 문제점을 깨닫고, 촉타우 인디언 무전병들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는 것으로 훈장을 대신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촉타우 인디언 무전병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영화 <윈드토커>의 소재가 된 2차대전의 나바호 인디언 무전병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사실. 처음 27명의 나바호 인디언 병사들이 과달카날 전투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전체 인구가 5만명밖에 안 되는 나바호 인디언 중에서 약 420명이나 참전하게 된 데는 촉타우 인디언들의 성공사례가 큰 기여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는데, 바로 프랑스 전선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했던 촉타우 무전병들과는 달리 나바호 무전병들은 동남아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일본군으로 오해를 받아 미군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경우가 많았던 것은 큰 문제였고, 그 때문에 실제로 미군은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각 나바호 무전병을 지키는 보디가드들을 붙여주기도 했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 <윈드토커> 공식 홈페이지 : http://www.mgm.com/windtalkers
→ 촉타우 무전병 홈페이지 : http://www.uwm.edu/~michael/choctaw/code.htm
→ 나바호 무전병 홈페이지 : http://bingaman.senate.gov/code_talk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