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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시대의 종언,<메타녀>
2002-08-26

컴퓨터 게임

<메타녀>는 일본 ‘안진 소프트’에서 만든 ‘미소녀 시뮬레이션 롤 플레잉 게임’이다. 지금 이 회사가 남아 있는지, 아직도 게임을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국내에는 97년 출시되었다. 주인공 마유미는 메타여고 천문부 학생이다. 학교를 장악하려는 생물부가 수예부와 힘을 합쳐 천문부로 쳐들어온다. 그 와중에 내분도 일어 몇몇 부원이 네오 천문부를 수립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모든 음모 뒤에는 학생회가 있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설정이지만 일본 게임에서 이런 설정은 그렇게 드물지만도 않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나 슬픈 생명이 아닌가 생각해버립니다.’ 오프닝의 진지한 내레이션은 황당무계한 설정, 짧은 교복 치마 아래 루즈삭스를 신은 귀여운 캐릭터들과는 이질적이다. 적당한 액션에 예쁘장한 캐릭터들이 나오고 가벼운 폭소가 터지는 게임인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슬픈 생명이니 뭐니 하니 도대체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 묘한 기분은 하면 할수록 더해간다. 특활부들 사이의 치열한 전투에서 많은 소녀들이 쓰러진다. 죽음을 맞으면서 한마디씩 하는데 그토록 격렬하던 싸움, 나아가 삶에 대한 허무하면서도 애절한 분위기가, 지금 보기에는 물론 당시 눈높이로도 조잡한 그래픽에도 불구하고 실감나게 표현되었다. <메타녀>는 전형적인 일본풍 캐릭터 게임의 껍질 속에 놀라울 정도로 가슴을 파고드는 부분이 있는 게임이었다.

97년에서 2002년까지 5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국 게임계는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시장 규모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질적 변화가 더 크다. 5년 전에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중 적지 않은 수가 이른바 하드코어 게이머였다. 그때라고 블록버스터가 없었던 게 아니고, 잘 팔리는 게임은 따로 있었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메타녀>처럼 완성도는 떨어지더라도 컬트적 재미를 가진 게임들이 설 자리가 있었다. 게임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이 너무 좋아서 어떤 게임이건 우선 해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인터넷도 그때까지는 대중화되지 않았고 TV에서도 게임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제작자가 게임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언지 스스로 열심히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게임의 정형화된 이미지에 집착했다면 <메타녀>의 조악한 그래픽과 언뜻 보기에는 유치하기만 한 대사 속에서 이 게임만의 묘한 매력을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특정 게임이 아닌 게임 자체에 대한 마니아다. 주위에서 무슨 말을 하건 일단은 해보고 스스로 확인한다. 어떤 사람들은 <메타녀>에서, 또 어떤 사람들은 <초시공영웅전설>에서, 다양한 여러 게임을 섭렵하며 자기 자신만의 게임을 스스로 찾아냈다.

게이머의 수는 5년 전의 몇 십배가 되었지만 게임의 다양성은 오히려 줄었다. 사람들은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같은 장르의 같은 게임을 한다. 스스로 파고들어 좋아할 수 있는 게임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에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설 자리가 없다. 특정 게임에만 광적으로 매달리며 그 게임의 스타일과 조금이라도 다른 게임은 모두 부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와레즈에서 다운받아 10분도 플레이하지 않은 게임을 쓰레기라며 여기저기 욕을 써놓는 사람이 있다. TV와 인터넷에서 밀어주는 스타플레이어만을 위한 시장에서 이제 <메타녀> 같은 게임은 살아남을 수 없다. 블록버스터의 화려한 유혹을 거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오직 나만의 컬트 게임을 찾아낼 공간도 필요하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