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e’라는 미제(美製) 단어는 한글로 ‘인디’라고 번역된다. 요즘은 이런 표음(表音)이 표의(表意)보다 더 효과적이다. 즉, 인디를 ‘독립’으로 번역하면 어감이 바뀐다. ‘indie’의 어원이 ‘independent’라서 직역한 것이겠지만 뉘앙스가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에게 독립이라는 단어는 정치적으로 다가오고, 그것도 ‘민족’과 연관해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indie/independent’는 ‘자영’(自營)이라고 번역하는 게 본래 뜻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즉, 정치적 용어라기보다는 경제적 용어다. ‘봉건주의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다룬 경제사 서적에 자주 등장하는 소규모 자영업자(small independent producer)라는 개념을 떠올리면, 이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어 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영어 문헌에서 ‘indie’의 대립어가 ‘corporate’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 뜻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corporate’란 주식회사 같은 거대법인을 말하는 반면, ‘indie’란 소규모 자영업자다. 따라서 인디란 세련되게 말하면 로컬 비즈니스고, 촌스럽게 말하면 동네 장사다.
나 같은 경우가 ‘인디’(이제 한글로 쓰겠다)에 속한다. 나의 ‘비즈니스’는 사장이 사원을 거느린 조직체가 아니라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관리하고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자영업이다. ‘그게 뭐가 비즈니스냐?’라고 묻는다면 ‘정말이지 바쁘다’라고 답하겠다. 어쨌거나 나처럼 학계나 언론계같이 ‘계’자 붙은 거대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지식인은 내 개념으로 ‘인디’에 속한다. ‘지식 자영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따라서 김규항은 인디고, 김훈은 인디가 아니다. 이건 ‘인디가 무조건 좋다’는 무식한 이야기가 아니라 활동방식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인디가 설 땅은 그리 넓지 않아 보인다. 앞서 경제사 이야기를 꺼낸 김에 조금 더 해보면, 자영업자의 운명은 ‘양극 분해를 통한 소멸’이다. 자신의 생산수단을 잃고 프롤레타리아가 되거나 아니면 생산수단을 집적해서 부르주아로 등극하거나 둘 중 하나다. 물론 반론이 없을 리 없다. ‘소규모 자영업자의 번창이 미래의 번영을 약속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경제학 담론이 대표적이다(이때 자영업자란 ‘실리콘 밸리’에 있는 그 기업들을 말한다). 그렇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때의 자영업이란 실질적으로는 하청업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싫든 좋든 거대 기업조직과 계약을 맺는다. 음악의 경우도 인디 레이블이 진짜 ‘자영업’인 경우보다는 메이저 레이블과 이런저런 계약을 맺고 지원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한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서양의 이야기다.
최근 내가 관여해왔던 ‘자영업’이 난관에 봉착해 있다. 간략히 말하면 그 사업은 음악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장기적 목표로 삼은 음악 웹진이다. 자발적 참여를 통한 비영리 사업이었기 때문에 수익을 목표로 하는 자영업과는 거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영리 사업이라곤 해도 ‘공익’ 사업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으니 결국은 그게 그거다. 그래서 ‘수익 없는 자영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 나와 동료들의 고민이다.
하나의 대안이 있다면, 영미의 인디 예술인이나 비평가의 집단들처럼 각자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은 부업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5시에 칼퇴근하는 나라와 밤샘 작업이 예사인 나라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달라도 많이 다르다. 직장에 매어 있는 친구들은 시간이 없어서, 그리고 직장을 갖지 않은 동료들은 돈이 없어서 이 일에 매달릴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학계에 일용잡급직으로 고용되어 강의를 하거나 다른 매체에 ‘잡문’을 써서 생계를 해결하는 나의 ‘수익 모델’(?)을 후배들에게 권장하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이 사업이 공익 사업이라고 우겨서 ‘공적 자금’을 끌어와서 탱자탱자하는 길을 알아봐야 할까. 아니면 만사 다 포기하고 학계나 언론계를 기웃거려서 ‘명예’나 ‘겸임’이 앞에 붙는 자리를 알아봐야 할까.
문제는 둘 다 내 취향(‘소신’은 아니다)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비루하고 초라하고 궁색하게…. ‘야메 CD’와 ‘복사본 책’으로 뒤덮인 사무실 벽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이건 한국에서 ‘인디’나 ‘자영’이라는 이름을 앞에 달고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의 운명인 것 같다. 문득 정약용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만권의 책을 읽은 들 아내가 배부르랴.”신현준/문화평론가 http://homey.w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