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뮤직비디오가 보여주는 이미지의 핵심이 뮤지션이 아니라 록스타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과연 그 록스타가 뮤지션인가 하는 점이라고 할 터다. 어처구니없는 음모 같아 보이는 그런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경우들이 (굳이 저 멀리 밀리 바닐리의 경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 거실의 TV를 점령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기야 생선 한 마리를 사기 위해 금속탐지기를 들고 다녀야 하는 이 물질적인 세상에서 예쁘장한 얼굴로 한번 떠보겠다(혹은 띄워보겠다)는 속셈은 오히려 순진한 편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게 마치 비디오의 배경음악으로 쓰기 위해 노래를 만든 것처럼 보일 때 발생하는 것이다.
요컨대 (사르트르식 표현을 유치하게 적용해보자면) 음악은 뮤직비디오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이 평범한 사실이 마그나 카르타처럼 느껴지는 건 꼭 누구 하나만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사상 유례가 없는 혁신적 디자인으로 전세계를 경악시킨다고 하더라도, 빈 깡통을 통조림이라고 팔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정체불명의 공허한 뮤직비디오를 보느니, 애초에 고의적으로 여성을 물신화하고 폭력을 미화하는 불순한 의도가 명백한 ‘나쁜 비디오’를 보는 쪽이 차라리 남는 장사일지도 모른다.
콜드플레이(Coldplay)의 새로운 싱글 <In My Place>의 뮤직비디오는, 그것이 단지 음악을 담아놓은 영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신선함을 획득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건 흡사 (지금도 어디에선가)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노래를, 그리고 가수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영하기 위한 의도로 제작된 텍스트처럼 단순해 보인다.
감독 소피 뮬러가 한 일이라곤, 타이틀이 지시하는 바대로 밴드를 제한된 공간 안에 밀어넣고는 음악에 맞춰 연주하는 시늉을 하라고 내버려둔 채, 앵글을 고정시킨 카메라를 몇번 이동시킨 뒤에 투덜대며 그 필름을 이어붙인 것밖에 없어 보일 정도다. 가장 괄목할 만한 구경거리라고 해봐야 보컬리스트인 크리스 마틴이 라디오헤드 이래로 영국의 ‘우울한 젊은 뮤지션들’(굳이 지칭하자면 뉴 그레이브 계열) 사이에서 유행과도 같은 클리셰가 돼버린 몸 동작을 몇번 보여주는 게 기껏이다. 게다가 그건 마치 어정쩡한 유리드믹스 같아서 과히 멋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In My Place> 비디오의 그 단순한 앵글과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편집도 나름대로의 의도와 효과를 가지고는 있을 것이다. 폼나는 비디오를 제작할 줄 모르거나 콜드플레이의 통장 잔고가 바닥났기 때문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니까 말이다. 이미 소피 뮬러와 콜드플레이는 지난 앨범의 히트 싱글 <Trouble>에서 컴퓨터그래픽을 잔뜩 활용한, 돈 좀 쓴 것 같고 볼거리 많은, 비디오를 합작한 전례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정작, 관건은 거기에 있지 않다. 비디오가 어떤 식으로 음악의 회화적 이미지를 획득하고 있으며 어떻게 시청자의 감정을 고양시키는지에 대해 설명할 책임은 관객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비디오클립을 보며 그 음악을 음미하는 것만으로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그러고나서, 수고스럽게도 한 가지만 더 한다면, 그 ‘음악’이 어떤 식으로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일일 것이다. 뮤직비디오는 음악에 관한 것이고, <In My Place>는 콜드플레이의 음악인 게 확실하다.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mymusic.co.kr 대표 bestles@mymus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