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이 다른 것으로 치면 비디오 재킷도 어디 가서 뒤지지는 않을 것이다. 대표적인 두 가지 케이스는 감동과 작품성을 강조하는 것들과 에로틱한 면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키는 것들일 텐데, 전자의 경우 말할 수 없이 지루하고 내용이 없는 것들이 많고 후자는 내용적인 면을 차치하더라도 항상 기대했던 것(!)에 못 미치곤 한다.
그러나 조화의 미덕이라는 것은 이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결국 작품성과 외설성이 적절히 버무려진 디자인들이, 욕구를 채우면서도 빌려갈 명분을 만들어주곤 한다. <클럽 버터플라이>의 경우 작품이 영진위 시나리오 공모 당선작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온갖 내로라 하는 제작진들의 경력이 쭉 적혀 있다. 여러 컷의 사진 이미지는 모두 에로비디오풍이지만 매우 호의적인 평가들 뒤에 붙은 평론가들의 이름과 직함을 보는 순간 빌리는 사람은 안도를 하게 된다. 눈은 이성적 근거를 찾으면서도 본능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비디오판 <생활의 발견>은 아예 지루한 에로영화로 둔갑해 있다. 잘 안 나가는 배우인 남자주인공이 여행중에 만나는 두 여인과 섹스를 벌인다? 재킷에 써 있는 뉘앙스는 에로비디오의 전개를 충실히 좇고 있고, 사진 이미지들도 하나같이 정사신에서 따온 것들이다. 우연히 이 비디오를 집어든 어르신들께서는 전철 광고에서 봤던 여배우가 쫄딱 망해 에로배우가 됐다고 생각하며 혀를 찰지도 모르는 일. 보란 듯이 써 있는 이 작품의 멋진 카피는 다음과 같다. “추상미, 예지원의 파격누드!!”손원평/ 자유기고가 thumbnail@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