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헝가리/졸탄 카몬디/2002년/98분/35mm&DV
35mm 흑백필름과 DV컬러를 혼용해 필름과 디지털의 ‘맛’의 차이를 한눈에 알게 하는 흥미로운 실험작. 원경에서는 주로 흑백필름을, 클로즈업에서는 주로 컬러디지털을 써서, 필름의 클래식한 안정감과 디지털의 다큐멘터리적 거친 느낌을 강하게 대비시키고 내러티브를 낯설게 하는 효과를 낸다. 이야기는 홀어머니와 사는 19살 젊은이 마치를 중심으로 그가 어머니 안나, 애인 엘비라, 10살짜리 집시소녀 줄리,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와 맺는 여러 가지 관계를 따라간다. 아버지의 회사에 정체를 숨기고 취직해 양파깎기, 짚더미 쌓기 등 험한 일을 하며 아버지에 접근해가고 금발 미녀 엘비라와 또래다운 사랑을 나누고 은행을 해킹해 불법으로 돈을 빼내다가 감옥신세까지 지는 마치, 그런 마치에게 과잉된 집착을 보이는 어머니 안나, 자신을 보살펴주는 마치를 남편으로 여기고 엘비라를 질투하는 집시소녀 줄리 등이 유머와 광기의 경계를 조심스레 넘나든다. 2002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재생>
프랑스·포르투갈/호아호 카니호/2001년/115분/DV
파리의 포르투갈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아들을 잃은 한 포르투갈 어머니가 주인공으로, 그녀가 아들을 쐈다고 생각하는 파리 경찰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는 와중에, 공권력과의 마찰을 꺼리는 남편이나 다른 포르투갈 이민자들과 겪는 심적인 갈등 등을 밀도있게 그렸다. 전체가 디지털로 촬영된 이 작품은, 디지털 특유의 거친 입자에 마치 필름영화인 듯 튀지 않는 매끄러운 카메라워킹을 동시에 보여주며 다큐적인 느낌과 드라마적인 느낌을 잘 섞어낸다. 감독 호아호 카니호는 마뇰 드 올리베이라, 빔 벤더스, 알랭 타네 등의 조감독을 했던 주목받는 포르투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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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터키/우밋트 우날/2002년/92분/DV
터키 최초의 디지털영화다. 제21회 이스탄불 국제영화제에서 국내부문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은 작품. ‘최초’답지 않게 세련된
영상을 구사한다. 영화는 이스탄불의 한 가난한 근교마을에서 일어난 미친 떠돌이여자 살해사건을 두고, 마을 주민들이 경찰한테 하는 증언들을
모자이크한다. 1주일째 마을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청년 가야, 그의 어머니와 친구들, 동네의 서점 주인, 사진관 주인 등이 각기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건 자체에 집중돼 있다가 어느새 그들의 사생활로 포커스를 옮겨가고 끝내는 경찰의 무자비한 폭행 속에 매몰된다.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가치의 갈등, 개인의 비밀이 공권력 앞에 드러나는 순간의 아찔함 등이 경찰 조사실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인상적으로 표현돼 있다.
<괴음>
일본/슈타로 오쿠/2002년/74분/DV
소설을 원작으로 했지만 대사와 드라마를 배제하고 사운드와 영상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뮤직비디오 같은 작품. 숨막힐 듯한 일본의 고등학교
교실에서 한 여학생이 잠들고, 그녀가 꾸는 꿈의 이미지들이 폭음에 가까운 사운드와 어지러운 영상으로 펼쳐진다. 아이들은 건물 옥상에서 액체에
적신 만화책을 혀에 붙인 채 나래를 펴고, 환각제를 흡입하고, 끝내는 학교 건물이 철거되는 모습을 본다. 17살에 <문학계> 신인상 최연소
수상자가 된 시노하라 하지메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사춘기 아이들의 불안정한 심리를 감각적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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