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드러낸 여자들은 도시의 여름을 긴장시킨다. 탱크톱에 핫팬츠로, 강렬하게 몸매를 드러낸 여자가 저쪽에서 걸어올 때, 더위에 늘어진 거리는 문득 성적 활기를 회복한다. 노출이 대담한 여름 여자를 볼 때마다 나는 내가 그 여자의 옷을 보고 있는지 몸을 보고 있는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 혼란은 온갖 정의로운 담론들이 아우성치는 이 황폐한 도시에서 밥벌이를 해야 하는 나의, 그나마의 즐거움이다.
진보적 자유나 보수적 진실을 절규하는 신문 칼럼을 읽을 때가 아니라, 노출이 대담한 젊은 여자가 그의 젊은 애인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활보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이 나라의 미래에 안도감을 느낀다. 여름 여자들의 그 손바닥만한 탱크톱과 핫팬티, 그리고 그 밖으로 드러난 팔다리 사이에서 나는 흔히 아득함을 느낀다.
여자들의 여름패션이 아무리 바뀐다 하더라도 탱크톱의 긴장감과 해방감을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탱크톱은 하나의 완연한 세계를 이룩한 패션이다. 드러내기와 감추기 사이에서 탱크톱은 가장 긴장된 타협을 이루어낸다. 그래서 헐렁한 탱크톱과 꽉 끼는 탱크톱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유혹적인가라는 질문은 성립되지 않는다. 탱크톱은 감추려는 가슴 부분을 오히려 더 드러냄으로써, 드러난 어깨와 팔을 거꾸로 감추는 듯하다. 탱크톱이 이룩한 그 긴장된 타협이 드러내기와 감추기의 경계를 허물어내는 것이다.
탱크톱의 끈은 브래지어의 끈과 함께 여름 여자의 어깨 위로 나란히 나타난다. 아, 그 두개의 끈 사이의 밀고 당김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 두개의 끈은 전혀 계층이 다른 끈이다. 탱크톱의 어깨끈은 겉옷으로서의 공식성을 위태롭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브래지어의 어깨끈은 그 최소한 공식성을 벗어나고 있다. 흔히 브래지어의 어깨끈은 속옷의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그 질감은 순결한 무방비의 질감이다. 그 두개의 끈 사이의 문명적 거리는 멀다. 그리고 그 두개의 끈은 서로 모순되면서 닮아간다. 탱크톱의 어깨끈은 형태를 버리고 증발하려 하지만, 브래지어의 어깨끈은 형태를 갖추어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한다. 여름 여자들의 어깨 위에서 그 두개의 끈은 충격적 대조를 이루며 평화롭게 공존한다. 그 어깨 위에서 브래지어 끈이 한쪽으로 흘러내렸을 때 평화는 문득 깨어질 듯한데, 나는 이런 어깨는 오래 바라보지 못한다.
올 여름에는 탱크톱의 어깨 위로 브래지어 끈이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투명한 브래지어 끈이 나왔다고 여성잡지 패션광고에서 읽었다. 속옷 끈이 몰고 오는 연상작용을 꺼려하는 새침한 속성이 여자들에게 남아 있는 모양인데, 뭐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탱크톱은 겨드랑살을 드러낸다. 살이 접혀서, 작은 고랑을 이루는 부위다. 마릴린 먼로는 이 부위의 살이 아름답게 접혀 있었다. 먼로는 죽어서 다 썩었겠지만, 후세의 여자들은 이 부위의 살을 먼로 살이라고 부른다. 너무 두껍지만 않다면 먼로 살은 아름답고 에로틱하다. 먼로살 주변에서 평화와 도발은 다르지 않다. 나는 그 모순 속에서의 긴장이 즐겁다. 더구나 지금은 찌는 여름인 것이다.
화장품 광고를 보았더니, 올 여름에는 틴트(TINT)라는 입술화장품이 나왔다. 이것은 장미에서 추출한 천연물감이다. 젊은 여자후배를 불러서 이 틴트를 실험해보게 했다. 틴트는 놀라운 화장품이었다. 립스틱이나 립글로스의 중량감, 작위성, 번들거림을 모조리 제거하고, 틴트는 여자의 입술을 편안하고 가벼운 여름입술로 바꾸어 주었다. 여자의 입술은 수많은 잔주름으로 덮여 있다. 립글로스는 그 잔주름들을 기름기로 덮어서 끈끈하게 번들거리는 공격성을 드러내지만 틴트는 그 주름들을 그대로 살려내면서 입술의 자연성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틴트의 아름다움은 그 헐거움과 그 빈약함에 있다. 잘 익은 수박을 식칼로 쪼개면 그 속에서 펼쳐지는 바다와 같은 선홍색은 천연의 색깔이다. 틴트는 그 수박의 식물성을 닮아 있었다. 립스틱과 립글로스는 바깥쪽을 지향하지만, 틴트는 입술과 미세하게 교섭하면서 입술의 안쪽을 지향하고 있었다. 립스틱과 틴트의 관계는 탱크톱 끈과 브래지어 끈의 관계와 유사하다. 틴트의 유혹은 그 평화와 무작위에 있었다. 밀고 당기면서, 여름 여자들의 노출과 화장은 스스로 긴장된 자리를 찾아간다.
나는 우리나라 여자들이 다들 예쁘고 다들 주눅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젊은 여자들의 성적 매력은 나라의 힘이고 겨레의 기쁨이다. 올 여름 여자들의 노출이 너무 심하다고 텔레비전은 개탄하고 있지만, 너무 그러지들 말아라. 곧 가을이 오면 여자들은 다시 옷을 입을 것이다. 좋은 것을 좀 내버려두라는 말이다.김훈/ 소설가·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