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가 부른다면 돌아가리라
이런 시도에는 AV를 둘러싼 열악한 환경에 대한 그의 불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디지털 비디오>에서 잠깐 설파했듯이, 유통이 판치는 상황에서 여전히 벗기기 경쟁만을 일삼는 제작관행은 유입되는 인력을 막아세우는 방벽이자 AV시장이 자멸하기 딱 좋은 지름길이다. 그는 무엇보다 일단 사회적인 시선이 좀더 관용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음성화가 고질적인 병폐를 키우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 전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자신의 작품 <아파바>를 틀었던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반지하나 옥탑방이나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어차피 그렇다면 햇빛이라도 보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공개적인 상영기회가 좀더 늘어나야 한다고 본다.” 그는 충무로 진출 이후 미아가 될지 모른다. 여전히 1천만원 이하의 작품들이 양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작비는 무조건 2500만원 이상이어야 한다고 못박는 삐딱한 그를 기용할지는 미지수다. 물론 그는 불러준다면 AV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자신은 AV든, 35mm든 평생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카메라만 들려준다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요?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AV가 상영되는 그런 날 말이에요.”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디자인 임정숙 norii@hani.co.kr
그리고, 에로영화가 진화하기 시작했다
어느 단편영화감독이 본 봉만대
감독의 작품들
하기호 / 단편 <전화><내
사랑 십자드라이버> 연출 · 현재 장편 극영화 준비중
나의 에로영화 여행은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소금기둥>이니 <야누스>니 하는, ‘3S 정책’에 발맞춘 ‘에로물’들이었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에 동시상영관을 수놓았던 ‘∼애마’ 시리즈는 87년쯤, 본격적인 에로비디오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괴로워하는
여성의 상체만을 고만고만하게 보여주던, ‘아주 많이 짜증나는’ 영화였다.
비디오 시장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등장한 ‘∼부인’ 시리즈마저도 사춘기를 지나 막
20대를 달리는 나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아, 이 대∼한민국엔 나 같은 놈을 위한 영화가 정말 없단 말인가!’
이러한 현실을 아쉬워하며 비싼 돈을 들여 양키들의 ‘포르노’로 연명하던 그때,
가끔씩 같은 동양인이 나오는,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자기네 전설을 화면 위에 옮기며, 따라하기에도 요상한 그네뛰기 체위나
원숭이 십자꺾기 등을 선보였던 <옥보단>류의 영화에 점차 싫증을 느끼던 그때, 꽈배기와 만두, 흑심 품은 연필, 그외의 모든
부인들을 밀어내고 미소녀들과 더불어 혜성처럼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봉만대였던 것이다.
그의 영화는 분명히 여타의 에로비디오와는 달랐다.
<연어>에서는 90년대 말 당시만 해도 어느 에로비디오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마스크 정희빈을 등장시켰고, <이천년>은
강한 콘트라스트로 왕가위처럼 서울 시내를 휘젓고다니는 디지털카메라의 새로운 시선 속에 한국 에로비디오로서는 최초로 애널섹스를
보여주었다. 그 밖에도 영화에 대한 영화이자 에로영화업계의 감독과 제작자, 그리고 여주인공이 어떻게 파멸로 치닫는가를 세밀하게
보여준 <귀공녀>, 섹스는 스파링이다, 권투도장을 중심으로 질퍽하고도 코믹한 섹스신을 보여준 <스파링 파트너>(못 보신 분들은
상상만 하시라, 헤드기어와 권투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서 하는 섹스란…), 곽경택 감독의 데뷔작 <억수탕>의 에로버전일 법한
<일심>, 에로비디오 마니아들을 위한 서비스 <여배우들의 볼꺼리>, 한·일 합작, 우리의 에로비디오 업계도 일본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모모>까지….
수많은 에로비디오 중에서 화면만으로도 자석이 철가루 골라내듯, 봉만대의 영화를
분리해낼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영화는 다른 에로비디오와는 확연히 달랐다.
봉만대의 영화들은 <털수선> <박하사랑>류의 기존 영화들의 제목 비틀기에 머물지
않고 작품마다 새로운 체위를 구사하기 시작했으며, 여배우의 애절한 신음소리 외에 ‘씨발놈아 제대로 좀 해’ 등의 리얼한 욕과
더불어 쩔쩔매는 남자들의 질퍽질퍽한 자연음을 화면에 그대로 담아냈다. 또한 CF와 뮤직비디오에서나 볼 수 있는 과감한 카메라
앵글과 편집의 구사는 우리 에로비디오의 수준을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어느덧 그의 팬이 되어버렸고, 비디오
재킷의 감독 이름을 확인하는 버릇까지 생기게 되었다.
지난해에 출시된 <터치>는 이게 에로비디오인지 아닌지, 그러니까 나 같은 마초들을
꼴리게 만들고 싶은 건지 아닌지, ‘결정적일 수 있는 섹스장면’에 화면을 4분할해버리는 놀라운 발상까지 보여줬다. 올 3월에
독립영화협회에서 주최한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에서 상영된(최초의 극장 상영이었을 거다) <아파바>는 매우 미묘한 문제인
양공주와 그의 딸 이야기를 다루기도 했다. 이쯤 되면 봉만대 감독은 스타일리스트로 불릴 법도 하다.
봉만대의 영화가 지나치게 밑바닥 인생들을 그림으로 해서 군데군데 맥빠진 캐릭터들이
나열되는 등 단점이 있긴 하지만 3∼4일에 한편의 영화를 제작해야 하는 에로비디오계의 현실을 감안하다면, 그의 영화는 수많은
AV 마니아들을 감동시키기에(?) 손색이 없다.
다음은 봉만대 감독의 영화 <디지털 비디오>에 나오는 도입부다.
한 남자(그는 비디오 대여점의 ‘알바’다)가 열심히 자위행위를 하고 있고, 뜬금없이
황당하고도 우스운 자막이 오른다. 이는 ‘애로’ 많은 에로영화감독의 자아비판이자 기존의 에로영화들에 대한 시비걸기, 혹은
본인이 영화를 만드는 태도를 설명하고 있다. 이건 봉만대의 ‘기도문’이나 다름없다. 이 문장을 내 글의 마지막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비디오는 혼탁한 세상을 살아가는 자의 영혼에 참이슬 같은 존재이며 적은 돈으로
여러 명이 돌려볼 수 있는 돌림빵 같기도 하고 담아온 비닐봉지론 쓰레기를 담을 수 있는 아주 여러모로 유용한 것입니다. 한
개인이 잘못 빌려간 비디오로 인하여 인생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여주시고, 18세 미만의 자에게 성인물을 대여해주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시옵고, 저 또한 사소하게 연체된 금액을 뽀리까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좁은 공간에서 적은 월급으로
비디오 대여하는 일을 해나가지만 그들에게 90분 동안 사랑과 낭만과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는 비디오를 전달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흥분한 남자, 대사가 점점 빨라진다.) 그리고 사랑의 배달부가 되어 아름다운 영화 같은 세상을 만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으어… 윽, 찍!”
- 봉만대 감독의 <디지털 비디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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