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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vs 조선희, <오아시스>를 말하다(1)
2002-08-09

˝소외된 사람들의, 가장 본질적인 사랑 이야기˝

소설가와 일간지 문학담당 기자로, 영화감독과 영화전문지 편집장으로, 그리고 영화감독과 소설가로,

이창동(48) 감독과 조선희(42)씨의 만남은 10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특별히 친하다고 할 것도 없지만, 조씨는 이 감독을 만나자마자

“<오아시스> 지지자 중에서도 열렬한 극좌파”임을 고백해버리고 말았다. 8월 초 출간되는 조씨의 첫 장편소설 <열정과 불안>에 대한 이야기가

인사말처럼 오간 뒤 시작된 대담에서, 조씨의 호의적인 질문과 이 감독의 고해성사적 답변이 기묘하게 맞물리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이 감독은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또는 “이거 말이 되나?”라는 자기 반문을 수시로 던지면서도 쉽게 말하기 힘들 것 같은 자기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편집자

이창동

조선희씨랑 대담하면 안 좋은 게, 사기치기가 쑥스러워서.

조선희

<오아시스>에 대한 반응이 어때요?

이창동

반응이 썰렁한 것 같애. 느낌에.

조선희

어제 대한극장 시사에서도 그렇게 얘기했다면서요. 이번 여름에 날씨가 하도 더워서 좀 썰렁한 영화가 시원해지라고 하는 거다, 그렇게 말하셨어요?

이창동

썰렁하다 못해 추워서 더위를 잊기에는 좋을 것이라고 했지. 나도 왜 그랬는지 몰라. 가끔씩 자제가 안 되는 경우가 많죠.

조선희

실제로 작품에 대해 내심 좀 마음에 안 들거나 이건 버렸어, 뜻대로 안 됐어 이런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에요?

이창동

그렇진 않아요. 사람들이 뭐보다 낫다, 이런 식으로 자꾸 이야기하잖아요. 발전했냐? 안 했냐? 그런데 발전, 성공 이런 거 체질적으로 되게 싫어하니까. 그런 거는 의식조차 하지 않는데 그래도 한 작품 할 때마다 힘들지만 어떤 식으로든 한 걸음 내디뎠냐, 아니냐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보면 어쨌든 내가 안고 있었던 고민을 가지고 나름대로 힘들게 뒹굴었다고 생각해요. 만족이라는 건 원래 없는 거니까.

촬영 - 100% 들고찍기, 프레임의 경계를 뛰어넘기

조선희

촬영과정에서 이전 두 작품보다 훨씬 힘들고 고초를 겪은 것 같은데 어떤 대목이에요?

이창동

4회를 찍고 새로 찍기 시작했죠. 영화를 이런 방식으로 찍자고 나름대로 컨셉을 세웠던 게 첫날 벽에 부딪혔다고. 내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구나. 다 들고찍기를 하려고 했는데, 첫날 들고 찍어보니까 이게 완전히 라스 폰 트리에야. 너무 카메라가 현란하게 돌고, 원래 이건 아닌데. 일단 촬영을 중지하고 고민 좀 해보자, 그리고 깊이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 찍기 시작한 거죠. 그외에 특별히 어려운 건 없었어요. 문제가 될 만큼.

조선희

그것도 홍보성 멘트예요? 실제로 내가 이정란 선배, 부인에게 물었을 때 이창동 감독이 예전 영화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들어 해서, 충청도 어디서 홍삼을 가져와서 꿀에 절여 보급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창동

홍삼을 꿀에 절였다는 거 쓰지 마세요. 왜냐하면 그걸 혼자서 먹기가 민망하잖아. 그런데 먹기는 먹어야겠고. 그래서 이거 위장약이야 하고. (웃음)

조선희

그런데 들고찍기 했으면 분위기가 확 달라졌을 텐데.

이창동

다 들고찍기를 했어요. 들고찍기에 대한 개념을 내가 스스로 정리를 한 거지. 내 나름대로. 원래 영화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고민 했거든. 영화는 프레임이잖아. 프레임 잡으면 나머지는 없는 거예요. 무라고. 프레임 잡은 게 완결된 미적세계고. 영화를 한다는 건 프레임의 세계를 절대시하고 나머지는 다 빼버리는구나, 그러면 프레임은 뭐지? 그게 영화매체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다루는 매체의 굉장히 오래된 관습일 거라고 생각해요. 화폭도, 프레임 안으로 도려내잖아요. 지금 디지털도 나오면서 점점 프레임을 부수기 시작하죠. 프레임이 흔들린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미세하게나마 흔들리고 있다는 게 닫혀진 구조를 깨려고 하는 거죠. 적어도 보는 사람은 그걸 느껴요. 프레임 안에 갇혀 있다는 걸 느끼질 않죠. 핸드헬드는 거기에서 출발했죠. 그런데 나는 카메라의 자유로움이랄까, 디지털처럼 자유롭고 유용하게 사용하기를 원했지만, 이게 움직이니까 새로운 형식과 문법을 만들어 내는 거예요. 그 움직임 자체가 하나의 형식이 돼버리는 거예요. 그것도 남들이 다 했던 것.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다시 카메라를 트라이포트 위에 얹고 나사를 조였죠. 그러니까 다시 옛날 방식, <박하사탕2>가 됐죠. 이게 아니다. 출발은 형식을 깨려고 한 건데, 그게 새로운 형식이 되니까 그걸 피하려고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는 태도가 인간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그래서 4회차에 끊은 거라구. 그러면 돌파구가 뭐가 있지? 고민하다가 그냥 그렇게 많이 움직이지도 말고, 그냥 들고찍자.

조선희

그게 100% 핸드헬드예요? 그런 것 치고는 파리채처럼 흔들리는 느낌이 없던데요.

이창동

처음에는 파리채처럼 흔들렸죠. 접점을 찾은 게 많이 흔들지는 않되 그래도 메자. 요 지점이 나 스스로도 납득시키기가 힘든 거지. 카메라 가만히 있는데 왜 메냐? 나도 몇번 메봤는데, 숨쉴 때마다 움직이게 돼 있고 힘줄수록 더 움직이게 돼 있거든. 그런 납득이 안 되는 고민, 싸움을 많이 했다니까.

조선희

그래도 결과를 놓고 보니까 프레임의 정형을 탈피했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이창동

관객이 뭔지는 모르지만 거칠다고 할까, 만들어지지는 않았다는 느낌이 들 거라고 봐요.

소재 - 사랑? 멜로의 방법론은 모조리 피하자

조선희

아까 한발 내디뎠냐, 아니냐를 생각했다고 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어디까지 더 나아갔다고 생각하세요?

이창동

우리가 자기하고 같지 않은 걸 못 받아들이잖아요. 특히 한국 사람이. 이 두 사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이죠.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기는 더 힘들죠. 근데 영화에서는 그게 가능해요. 영화에는 온갖 장치가 다 있으니까. 영화적이라고 흔히 말하는 것들. 관객의 동의만을 이끌어내면 되니까. 때론 거기에서 여러 가지 사기와 영화적 거짓이 만들어지는 거거든요. 나는 받아들이기 힘든 두 사람의 사랑을 보여주는 거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 묻는 거니까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지. 이거 말이 되나. 그러니까 멜로영화가 가지고 있는 온갖 방법론을 피하고 싶었던 거야. 음악도 없어야 하고. 멜로드라마할 때 멜로가 멜로디에서 온 거거든. 거기에는 본질이 숨어 있어요. 음악 위에 드라마를 싣는 거잖아. 중요한 건 멜로디지 드라마가 아니라고. 관객의 감정을 조작한다 그럴까. 그런 영화적 장치들을 피해가거나, 혹은 부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조선희

처음엔 전과자가 뇌성마비 여자를 사랑하는 얘기라는데 좀 억지스럽지 않을까, 그런 예상을 했어요. 영화를 보면서는 참 자연스럽다고 느꼈어요. 예컨대, 감옥에서 2년 반 동안 남성호르몬을 억제당한 사람이, 대단한 도덕의식 같은 것도 없는 젊은 남자가 빈집에 버려진 뇌성마비 여자를 봤을 때 강간의 충동을 느끼도록 설정한 게 굉장히 리얼해요. 이 모든 과정이 설명되는 건 종두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무기나 경쟁력도 없고, 사회화 과정도 없고. 하얀 도화지 같은 인물이에요. 행동 하나하나가 다 튀고 대책이 없는 인물, 이 사람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데에 어떨지 감이 안 서잖아요.

이창동

그런 인간은 사회와 격리시켜야 해요. 실제로 격리시키잖아요. 우리의 제도가. 그런 인간은 대책이 없다. 정신병동에 갇히기에는 증세가 뚜렷하지 않으니까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죠. 가족조차. 그게 우리가 갖는 이른바 모더니티의 판단이에요. 그럼 우리는 뭐냐. 우리가 맞다고 믿는 건 뭐냐. 소위 말해서 사회화, 사회에 적응을 해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된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 사회화의 내용은 뭐냐. 따지고 보면 한심한 거거든요. 밤에 라디오 틀면 안 돼요. 크게 틀면 안 돼요. 공부하는 수험생 있는데. 사회화의 내용이라는 게 그런 거죠. 자장면 오토바이 타고 의정부 가면 안 되고, 영화 찍는 데 방해하면 안 되고, 참 답답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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