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뮤직비디오 제작에 있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목적 가운데 하나는 공연장을 일반 가정의 거실로 옮겨놓는 것에 있었다. 공연 실황을 담은 비디오/DVD 따위가 여전히 롱-폼(Long-Form) 뮤직비디오 카탈로그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도 거기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뮤직비디오 시대의 도래 이후에도 콘서트의 가치는 결코 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의미는 증대 일로에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콘서트의 가장 절대적인 매력이, 아이러니하게도, 시청각의 범주에서 파악되는 게 아니라는 점부터가 그렇다. 그건 몸을 통해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연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필름에 담아내어 ‘DTS 서라운드’니 ‘돌비 디지털’이니 하는 기능을 갖춘 최첨단 홈시어터 시스템으로 재생한다고 하더라도 청중과 뮤지션이 함께 호흡하는 공연장의 그 특별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뮤지션과 대중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감의 원근은 좀더 본질적인 면에서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가 촬영과 편집에 사용되는 온갖 장치와 효과들을 통해 록스타의 이미지를 부각시킴으로써 뮤지션과 대중 사이의 심리적 간극을 벌여놓는 역할을 해왔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반면에 콘서트는 음향과 조명 따위로 국한된 최소한의 장치를 제외하고는 온전히 뮤지션과 대중 사이의 교감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U2의 보노는 <Beautiful Day>의 비디오클립에서 자신이 “너무 록스타처럼 보인다”고 아쉬움을 표한 적이 있고, 우리는 뮤직비디오 속에서 온갖 ‘똥폼’을 잡던 얼치기 뮤지션들이 스테이지 위에서 스타일 구기며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몇번쯤은 목격한 경험이 있다.
제작연도 2002년감독 조너선 데이튼, 발레리 페리스출연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새로운 싱글 <By The Way>의 뮤직비디오는 그런 관점에서 꽤나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지난 주말(7월26일) 잠실 올림픽 스타디움 보조경기장에서 있었던 그들의 내한공연을 여기 한데 엮어놓고보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떡 본 김에 제사지내자는 셈이긴 하지만 결코 그뿐만은 아니다.
록비디오의 전형적인 수법을 사용한 이 비디오클립의 구성방식만 해도 그렇다. 사운드의 흐름을 반영하는 밴드의 연주장면과 극적인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연출장면이 교차편집된 이 비디오를 통해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뮤지션과 록스타의 거리감 사이에 스스로를 몰아넣고는 자기 패러디의 아이러니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들은 이 작품을 통해 록스타로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뮤직비디오에 반영하고 있다. 미치광이 택시 기사가 보컬리스트인 앤서니 키에디스(Anthony Kiedis)를 알아본다는 설정, 그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CD를 틀어놓고 질주하며 납치극을 벌이는 사이 앤서니 키에디스가 휴대전화를 통해서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줄거리는 그 자신들을 ‘유명인’(Celebrity)이라고 상정한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은 그들의 과거 비디오들의 성격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디오클립이 지극히 그들답다는 사실이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자신들의 인기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대중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예전과 다르지 않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우리는 미치광이 택시 기사의 그 정열적인 ‘막춤’에서 자연스럽게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멤버들을 떠올리게 되고, 택시 기사에게 주입된 그들 본래의 이미지를 통해 그 간극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의 생동감 넘치는 연주 모습과 공연장에서의 에너지를 경험하는 일은 (적어도 이 비디오에 관한 한) 중요한 이해의 단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입으로 확인시켜준 바와 같이, 그들은 공연장에 모인 관객과 함께 호흡함으로써 살아 있음을 느끼는 종류의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는 그들과 관객 사이에 자리한 애매한 매개체 혹은 그들이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경유하는 길’일 뿐이다.(*지난호에서 딕 체니를 ‘국무장관’이라고 한 것은 ‘부통령’의 오류임을 정정합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멍청한 백인들>이 예정대로 도착했거나, 산더미 같던 신문지 뭉치를 전날 밤에 재활용 쓰레기 수거함에 내다버리지만 않았어도… 라는 변명을 덧붙이는 이유는, 남의 나라 정치가의 직책을 혼동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원고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했음을 얼버무리기 위한 것입니다.)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mymusic.co.kr 대표 bestles@mymus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