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멋대로 해라>. 누벨버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장 뤽 고다르 감독의 60년 영화 <A bout de souffle>의 우리말 제목이다. 또한 현재 MBC에서 방송되고 있는 수목 미니시리즈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 <네 멋대로 해라>와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는 표면적인 줄거리에선 비슷한 점이 없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미셀이 자동차를 훔쳐 타고 가다가 우연히 경찰을 죽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한 여인과 도피행각을 벌이다가 그녀의 고발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드라마는 소매치기 출신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남자와 연상의 치어리더 출신 여자, 인디밴드 멤버인 중성적 매력의 여인, 유복한 환경의 신문사 연예부 기자 등이 얽힌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같은 이름을 가진 영화와 드라마는 내용상 거리가 멀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 두 작품은 비슷하다. 글쎄, 자타가 공인하는 누벨버그의 명작과 상업화된 TV 미니시리즈를 동격으로 놓는 것에 대해 반발할 독자가 많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가 60년대 젊은이의 초상을, 관습을 깬 도발적인 화법으로 스크린에 담은 것처럼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도 전에 볼 수 없던 생기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그 생기는 특히 세명의 젊은 연기자들에게서 두드러진다.
양동근, 이나영, 공효진. 이미 다른 드라마나 영화 CF에서 익히 마주쳤던 이른바 ‘스타’들지만 우리는 <네 멋대로 해라>를 통해 그들을 연기자로서 새삼 새롭게 만나고 있다.
양동근은 이미 꽤 많은 고정 팬을 가진 연기자이다. 물론 그 팬들 중에는 그가 시트콤에서 보여준 건들거리며 시답지 않은 장난이나 치는 코믹한 캠퍼스 한량을 연기할 때 생긴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고, 꽤 세련된 랩을 구사하는 그의 가수활동에 반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 멋대로 해라>에서 양동근은 다른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연기자로 발돋움했다. 그가 맡은 인물은 뇌종양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소매치기 고복수이다. 답답하고 그늘진 인생이었고, 앞으로 남은 삶에서도 화려한 역전을 꿈꾸긴 어렵다.
양동근은 특유의 느릿느릿하고, 때로는 어눌하게 툭툭 내뱉는 대사와 조금 흐느적거리는 듯한 움직임을 통해 한정된 인생의 시간 속에서 처절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애쓰는 젊은이를 담담하게 연기했다. 과장된 터프가이도, 그렇다고 억지로 희화화시킨 캐릭터도 아닌 모호한 인물이지만 사람들은 그에게서 실제로 내 앞에 있는 듯한 강한 존재감을 느낀다. 그런 존재감은 시청자에게 극중의 고복수와 현실의 양동근이 동일인이라는 착각을 준다. 연기 교과서에선 이런 스타일의 연기를 ‘메소드 연기’라고 했다. 양동근이 실제로 메소드 연기론을 염두에 두고 연기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처럼 규격화된 신세대 스타들을 보아온 사람들에게 양동근의 연기는 미각을 확 일깨우는 강한 풍미가 있다.
이나영은 아직까지도 모 화장품 CF에서 상큼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친숙한 CF스타 출신이다. CF 속의 깜찍한 모습은 그녀에게 일찌감치 유명세를 가져다준 아우라였지만, 그 그림자는 연기자로 자리잡는 데는 적지 않은 방해를 했다. 그러나 <네 멋대로 해라>에서 전경 역을 통해 이나영은 마침내 CF의 아우라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것 같다. 무덤덤하고 때로는 둔해 보이는 전경의 모습은 그동안 보아온 이나영의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별로 반응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피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냥 있어도 없는 듯, 무시하며 자신의 틀 속에서 속편히 지낸다. 그러다가 고복수란 남자를 만나면서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주위에 대해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색으로 치면 채도가 낮은 단조로운 회색 계열 이미지이지만, 이나영은 전경을 담백하고 살가운 인물로 그려냈다. 강하고 진한 색깔의 개성만인 신세대의 특성으로 여겨지는 풍토에서 의외의 모습이지만, 오히려 그 투명함이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와닿는다.
공효진은 이미 SBS <화려한 시절>을 통해 특유의 수더분한 이미지와 능청스런 연기로 주목을 받았던 연기자이다. 화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신세대 스타들 사이에서 솔직히 공효진의 외모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본인에게는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그러나 드라마의 캐릭터를 풀어가는 소화력과 표현력은 최근에 등장한 젊은 연기자들 중 단연 최고이다. 영화 <화산고>에서만 해도 조금 어설펐지만 <화려한 시절>을 거쳐 <네 멋대로 해라>에 와서 완전히 ‘공효진식 연기’의 틀을 잡아갔다. 그녀의 연기는 요란한 장식이 없다.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다. 또박또박 끊어지는 대사에 시선은 항상 확실하게 목표를 잡고 있다. 그 또래의 젊은 연기자들이 종종 허공으로 향한 애매한 시선과 우물거리는 대사를 마치 새로운 연기 스타일로 착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에서 느끼는 절망감과 그것을 애써 감내하는 슬픔을 그녀처럼 진하고 힘차게 연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공효진의 연기에는 속된 말로 각이 잘 잡혀 있다.
두툼한 질량감과 무색투명한 색감, 그리고 명암과 윤곽이 뚜렷한 존재감. 각기 다른 개성 속에서 세명의 연기는 묘한 대립의 긴장과 서로 상보하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론 그들의 연기가 천의무봉의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트레오 타입화된 때로는 만화 속 주인공 같은 모습이 삶의 반영이라는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활개치는 상황에서 모처럼 이 땅에 발을 디딘 진짜 사람 같은 캐릭터를 접했으니 이 정도 흥분은 용서될 수 있지 않을까?김재범/ <스포츠투데이> 기자 oldfield@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