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물세살에 등단을 했다. 지금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그때는 그게 빠른 거였다. 내 또래 중에서 나보다 등단이 빨랐던 작가로는 김인숙씨가 아닌가 싶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내가 스무살인지 스물한살 때에 그녀의 신춘문예 당선작을 신문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녀의 나이를 활자로 읽으며 나는 시작도 안 했는데 이이는 벌써 등단을 했구나, 생각했었다. 일찍 등단을 한 편이라 작품 활동(이렇게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다. <문예중앙>으로 등단을 했는데 그뒤 일년 만에 <문예중앙>으로부터 청탁을 받았으니까. 그뒤 사오년 동안 일년에 단편 두어편 쓰는 게 고작이었으니까)을 임철우, 이창동, 이승우 최수철… 이런 선배들과 함께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이 중견작가가 되어가는 동안에도 나는 늘 뒤에 신인 작가, 혹은 젊은 작가로 남았다. 박상우나 구효서가 등장했을 때는 그들과 함께 젊은 작가였고 윤대녕과 공지영과 함께 젊은 작가로 지칭되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성란이나 조경란, 김영하와 함께 나도 젊은 작가로 불렸다. 나는 그것이 좋다.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아직 태어나지 않는 작가들과 함께 젊은 작가로 분류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프랑스의 마그리트 뒤라스처럼 예순이 되어서도 칠순이 되어서도 젊은 감각으로 삶을 단숨에 관통하는 작품을 써낼 수 있기를 나 자신에게 바라고 있다(뒤라스가 <연인>을 예순이 지나 썼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곤 한다).
최근에 내가 생물학적으로 정말 젊은 작가였던 때에 그러니까 스물세살에서 서른이 될 무렵까지 틈틈이 썼던 콩트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전체적으로 읽어볼 일이 있었다. 예전에 썼던 글들을 현재에 다시 읽는 마음이 개운할 수는 없다. 게다가 나는 최근 십년 가까이 콩트를 쓰지 않았다. 콩트를 쓸 수 있었던 때에는 밥벌이를 하느라 밤낮으로 시간에 쫓겨 소설을 쓸 수가 없었던 때이고 최근엔 또 소설에 빠져 있느라 콩트를 쓸 여유를 전혀 갖지 못했다. 내가 젊은 날 썼던 콩트들은 쓴 사람에게서조차 잊혀진 채 십여년간 상자 속에 저희들끼리 있게 되었다. 그걸 꺼내 다시 읽어보는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처음엔 출판사에서 정성스레 챙겨준 원고들을 읽어볼 엄두를 못 내고 마냥 책상 위에 얹어두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갔다. 간혹 차르륵, 몇장만 넘겨보아도 문장의 행간들에 쌓여 있던 온갖 상념들이 마치 불러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올랐다.
오빠네와 함께 살던 때에 집에 들어가기 싫어 밤이 깊도록 거리를 걸어다니고 걸어다니던 시절. 시인 황인숙과 버스비가 없어 그냥 걸어서 집에 가던 중에 선배를 만났다. 너무 반가워서 차비 좀 달랬더니 순간 선배가 너무 당황했다. 선배는 잠깐만 기다리라 하며 어딘가를 다녀와서 오백원을 우리에게 주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선배도 천원짜리 한장을 달랑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차비를 달라고 하니 그걸 주고 나면 자기도 차비가 없게 되는 판이라 돈을 바꿔서 반을 준 것이었다. 돈만 없는 게 아니었다. 각자들 손에 닿지도 않은 사람들을 사랑하느라 늘 머리가 아팠던 시절이기도 했다. 왜 서로 그렇게 등만 보고 있었는지. 돌아보면 되었을 터인데 말이다. 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시위대가 물결을 이루고 있는데 동참하기는커녕 못난 젊은이 나의 소망은 오로지 나만 들락거릴 수 있는 방 한칸을 갖는 것이었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어찌나 애를 썼는지 늘 위산과다로 속이 쓰렸다. 스물여섯인지 일곱쯤에는 아직도 이십대야? 왜 이렇게 길어! 싶은 게 안에서 막 고함이 터져나왔다.
그때에 썼던 글들. 어느 것은 친구 방에서 쓰기도 하고 어느 것은 찻집에서 쓰기도 하고 어느 것은 앉은자리에서 금방 쓰기도 했던 글들. 스물셋에서 서른이 될 무렵까지 틈틈이 내게 밥이 돼주었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는 밤은 꼭 잠을 설치게 되었다. 수정하고 보완하느라 그런 것만도 아니고 옛 생각들 때문만에 그리 된 것만도 아니다. 이게 내가 쓴 글 맞나? 싶을 정도로 어떻게 해서든 메마른 일상 속에서 웃음을 끌어내 보려고 무진 노력을 한 것 같은 그 당시의 내가 조금 가상한(?) 생각이 들어서였으며 계속 젊은 작가로 남고 싶으면 그때의 웃음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반성이 일어서이기도 했다.신경숙/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