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너스 베티>의 한글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다음 문단을 주의깊게 읽어보자.
‘<사랑하는 이유>: 1981년에 시작하여 현재까지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미국의 TV연속극. 단독 웹사이트까지 만들어져 이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아내의 죽음 뒤 일에만 몰두하는 닥터 데이빗을 주인공으로 그의 경쟁자인 닥터 로이 사이에 미모의 간호사 클로이와 자스민(이승희)이
등장한다. 애정관계와 전문상식을 고루 갖춘 드라마인 <사랑하는 이유>(A Reason to Love). 그러나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주된
줄거리는 인물들의 오해와 화해로 이어지는 멜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예전에 국내에서 TV드라마 <종합병원>이 방송될 때 미국의 <`general Hospital`>을
참고한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 제기된 것처럼 <`general Hospital`>이 처음 방송될 때에 <사랑하는 이유>를 참고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현재의 <`general Hospital`>과 <`er`>을 탄생시킨 메디컬드라마의 초석.’
이렇게 장황하게 한글 홈페이지에 있는 문단을 옮겨 실은 이유는 잘못된 정보가 마치 사실인 양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는 아주 좋은 예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서 처음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TV드라마가 미국에서 20년 동안이나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을 탄생시킨 초석’이라는 내용은 완벽히 잘못된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같은 제목의 TV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과거에도 그런 드라마는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가수 신해철이 한 인터뷰에서 “이건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 사생활을 창조하는 것”이라며
스포츠신문을 성토했던 장면을 떠올릴 정도로, 이런 잘못된 정보가 마치 진짜인 것처럼 편집되어 한글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다음 문단도 같은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실제 TV드라마가 이 영화의 중요한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너스 베티>의 몇 장면은 <사랑하는 이유>의 세트장으로 가서 영화와 드라마를 동시에 찍었다. 그곳에서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너스 베티>의 카메라도 돌아가기 시작했다. 따라서 <사랑하는 이유>의 카메라맨을 비롯한 스탭들 모두 자연스레 <너스
베티>의 엑스트라가 되었고, 모든 출연진은 두개의 카메라 앞에서 연기해야 했다. 이 장면에서 이승희가 등장하여 국내에 이 영화가 소개되기도
전에 벌써 네티즌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문단을 읽은 뒤 <너스 베티>를 본 어떤 관객이 그렉 키니어와 이승희가 출연하는
TV드라마 <사랑하는 이유>의 촬영장을 보고 싶다며 영화 속 베티가 그랬던 것처럼 LA로 가려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할 정도로 심하게
잘못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영화 속 이야기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가상과 현실이 혼재되는 상황을 느끼게 하기 위해 이런 정보들이 의도된 것이라면, 그나마 이해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국내 관객이 미국 TV드라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이용하려 했다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터넷 공간에 올라와 있는 대부분의 정보들이 그 근원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의
정보를 제공하는 공식적인 웹사이트에서마저 이렇게 부정확한 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올리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특히
‘영화의 모티브’라는 말을 사용해가며 관객이 영화를 해석하는 데까지 혼란을 주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TV드라마 <사랑하는 이유>의 홈페이지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마치 진짜 방영되는TV드라마의 공식 홈페이지인 양 만들어진 이 홈페이지는, 하지만 그야말로 가짜를 위해 만들어진 가짜 홈페이지일 뿐이다. 20여년간 방영된
인기 TV시리즈라고 생각하고 홈페이지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다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방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홈페이지의
운영주체가 ‘A Reason to Love, Inc.’라는 가상의 회사로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도, 이 홈페이지는 배급사가 <너스 베티>의
홍보용으로 만들었거나 혹은 <너스 베티>의 팬이 재미삼아 만든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하튼 영화를 보기 전에 관객이 관련 웹사이트를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찾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절대 간과해선 안 될 듯하다. 또한 잘 정리된 깊이있는 정보들이 기발한 아이디어와 함께 홈페이지를 장식할 때만, 더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는 힘이 된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강조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영화 <너스 베티>의 한글 공식 홈페이지는 그런 의미에서 좋은
교훈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사랑하는 이유> 공식 홈페이지 http://www.areasontolove.com
■ <너스 베티> 공식 홈페이지 http://www.nurse-betty.com/
■<너스 베티> 한글 공식 홈페이지 http://nursebetty.dreamx.net/